오늘날의 현실세계에서 5등신 여체의 풍만함은 하나의 ‘범죄’로 취급되지만, 이상하게도 그의 조각들은 보는 이의 마음을 훈훈하게 한다. 짧고 굵은 다리, 미어질 듯 팽배한 엉덩이…. 왜 그것들은 이토록 아름다운 것일까.
선 굵고 탄탄한 여체 조각을 통해 한국적 미감에 천착해온 조각가 고정수씨의 15번째 개인전이 서울 선화랑에서 열리고 있다. 1981년 대한민국미술전람회에서 대상을 받은 이래 한국 현대조각사에 깊은 날인을 새겨넣은 작가의 30년에 걸친 작품활동을 반추해 보는 전시다.
전시는 1부와 2부로 나뉘어 진행된다. 1부에서는 화강암, 대리석 등의 돌과 청동주조로 빚은 여체조각을 선보인다. 5~6등신의 건강한 몸매가 선사하는 믿음직스럽고 풍만한 생명감, 원시적인 소박함이 따뜻하고 푸근한 어머니의 품에 대한 갈망을 불러일으키는 작품들이다. 젊어 한때 서구적 미의식에 경도됐던 작가가 새로이 길어올린 한국적이고 향토적인 미의식은 풍요다산의 여성에 대한 모종의 그리움이 우리 유전자에 각인돼 있음을 깨닫게 한다.
2부에서는 그가 평소 ‘딸들’로 불러온 창고 속 조각품들을 바깥세상으로 ‘나들이’ 시킨 사진들이 전시된다. “조각품들을 가두어 놓고 있으니 너는 죄인”이라는 친구의 말에 충격을 받은 작가는 평소 완성된 조각을 사방에서 촬영해 두었던 사진들과 우리나라 산천을 찍은 사진들을 합성, 갇혀있던 ‘딸들’을 가상으로나마 산천으로 해방시켰다. 남의 손에 맡기기 싫어 환갑에 컴퓨터 학원을 다니며 직접 포토샵을 배웠다는 작가의 말에서 ‘딸들’을 향한 살뜰한 정이 느껴진다.
1부는 9월11일까지, 2부는 14일부터 29일까지 전시된다. (02)734-0458
박선영 기자 aurevoi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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