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난히 쾌청한 하늘아래 삼봉호가 잔잔한 바다를 가르고 접안시설에 도착하자 고독에 빠져있던 섬이 갑자기 부산스러워졌다.
“독도다!” 소리치며 갑판 위에서 튀어나온 사람들은 사진 찍겠다고 위험한 부두의 가장자리까지 서둘러 나서고, 이를 제지하는 독도경비대원들의 손사래는 덩달아 바빠진다. 경비대원들과 함께 마중 나온 삽살개 ‘몽이’가 관광객 사이를 헤집고 다니며 인사를 하는 통에 좁은 부두는 더욱 복작거린다. 독도 순례객들이 짧은 방문을 아쉬워하고 배에 오른 후, 독도는 다시 평온의 제 모습을 찾았다.
누군가 독도를 우리 국토의 막내섬이라 부르지만 사실 독도는 울릉도(250만년)보다 오래 전, 제주도(120만년) 보다도 훨씬 전(460만년)에 바다 위로 솟은 맏형 격의 화산섬이다. 동해의 거친 파도와 싸우며 고독에 익숙해 있던 섬은 일본의 계속된 영유권 주장 때문에 우리 자존의 상징이 되어왔다.
현재 독도에 사는 사람은 독도경비대 소속 1개 소대와 독도 등대를 지키는 항로표지원 3명, 그리고 경비대가 있는 동도에서 150m 떨어진 서도에 터전을 잡은 독도 주민 김성도(67), 김신열(69)씨 부부다. 남편 김씨는 부부만 사는 이곳 독도리의 이장이기도 하다.
김씨가 독도와 인연을 맺은 지는 40년이 더 된다. 1960년대 중반 독도의 첫주민인 최종덕(87년 작고)씨와 함께 독도를 오가며 해산물을 채취해 내다 팔았다. 해녀들과 독도에서 일을 하던 김씨는 그들 중 한명인 지금의 아내와 살림을 꾸렸다. 부인 김씨는 제주 출신이다.
“외롭지는 않느냐”란 질문에 독도리 김 이장은 무슨 헛소리냐는 듯 “재밌지”라고 잘라 말한다. 얼마 전 아내가 왼쪽 다리를 다쳐 울릉도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다. 나간 김에 좀 더 쉬다 올 법도 한데 “깝깝해서” 서둘러 독도의 집으로 돌아왔다. “예약도 못해 무조건 병원 문을 열고 들이밀었는데 독도에서 왔다고 하니 의사고 간호사고 다 잘 봐주데.” 김 이장은 독도인의 유명세 덕을 톡톡히 보고 산다고 했다.
97년 해양수산부가 그들이 살던 터에 3층짜리 어업인 숙소를 지어줬다. 1층은 기계실이고 2층은 담수화설비가 갖춰졌다. 3층이 부부의 공간. 자가발전기가 있어 웬만한 가전제품은 다 갖추고 산다. 큰 바람 이는 날이면 부부는 방안에 틀어박혀서는 TV를 즐긴다.
외딴 섬에 살다 보니 자식들 얼굴 보기가 쉽지 않다. 딸 둘에 아들 하나, 모두 출가해 뭍에서 살림을 이루고 산다. 작년 여름에는 모처럼 큰 딸 식구들이 찾아왔다. 하지만 딸 식구를 태운 배는 독도에 거의 다 왔다가 파도가 높아 접안을 포기하고는 다시 돌아가야만 했다.
김 이장은 “예전에는 문어가 땅 위로 슬슬 기어올랐는데 섬 주위를 그물에 통발이 온통 휘감고 있어 고기고, 소라고 씨가 마른다”고 푸념이다.
독도에서 살면서 좋은 점을 이야기해달라 하니 “자랑할게 뭐 있노. 그냥 내 집에 마냥 누워있을 수 있는 거, 그거나 자랑할까.” 하기야 독도에 자기 집을 가지고 있고, 그 청정의 자연을 누워서 만끽할 수 있는 여유보다 부러운 게 또 있을까.
독도를 지키는 독도경비대는 순환 근무한다. 울릉도에 머물며 1년에 2달씩 1개 소대가 번갈아 독도에 들어온다. “섬에 뭐 할 것도 없으니 독도 근무는 휴가 아니냐”고 묻자, 신종태(33) 부대장은 “다른 곳에 있는 의경들은 2주에 한 번 외출도 하고, 샤워도 맘껏 할 수 있지만 이곳에선 불가능하다”고 고충 보따리를 풀어놓는다.
“배가 못 오는 날이 많아 장기간 보관 가능한 냉동식품으로 대부분의 끼니를 때워야 하고, 겨울이면 눈도 많고 몸을 가눌 수 없을 정도로 바람이 거세 위험하고, 여름에는 바닷모기가 극성이라 고생”이라고 했다. 부두 접안시설은 좁고 관광객 수는 많아 행여 바다에 빠지지 않나 신경 쓸 일도 많다.
독도 이장이나 독도 경비대에게 많으면 하루 4번 찾아오는 관광객은 그리 성가진 존재만은 아니다. 되려 2시간 30분 배를 타고 와서는 섬의 흙엔 발도 못디뎌 보고 콘크리트 구조물인 접안시설 위에서만 고작 20분 머물며 사진만 찍고 가는 그들이 안쓰럽기까지 하다.
진짜 성가신 이들은 ‘특별한’ 완장을 찬 사람들이다. 국회의원이다 고위 공무원이다 ‘방귀께나 뀐다’는 높으신 분들은 뱃멀미 싫다고 헬기를 타고 날아오기 일쑤다. 천연기념물인 괭이갈매기 서식지 등 독도의 자연환경을 망가뜨리는 주범이다.
무슨 산악회다, 수중탐사팀이다 하는 단체들도 독도에 와서는 쓰레기 몇 점 치우고는 플래카드 크게 펼쳐놓고 함께 사진이나 찍자며 졸라대고, 섬 정상까지 독도 구경을 제대로 시켜달라고 귀찮게 하기 일쑤다. 일부는 가족들까지 데리고 와서 독도에서의 특별한 휴가를 만끽하기도 한다.
독도와 독도의 사람들은 망망대해와 더불어 고즈넉한 원하지만 쓸데없이 시비를 걸어대는 인접국과 특별한 땅에서의 특별한 대우를 요구하는 사람들로 인해 때때로 번잡하고 귀찮다. 독도가 고독한 이유다.
독도=글ㆍ사진 이성원기자 sungwon@hk.co.kr
●여행수첩/ 우리의 동쪽 끝 섬, 독도
■ 우리의 동쪽 끝 섬, 독도는 크게 동도와 서도의 큰 섬 2개와 89개의 작은 섬들로 이루어졌다. 섬 전체가 천연기념물 336호로 지정돼 있다.
■ 독도에 가기가 쉽지만은 않다. 돈과 시간이 준비됐다고 해도 하늘이 도와주지 못하면 입도가 어렵다. 울릉도 도동항에서 출발하는 독도행 여객선은 한겨레호와 씨플라워호(대아고속해운), 삼봉호(독도해운) 등이다. 여름철 성수기에는 하루 4번 운항한다. 부정기적으로 운항하고 예약 인원이 70명 미만이면 출항하지 않는다.
■ 독도의 방문객 수는 1회에 470명, 하루에 총 1,880명으로 제한돼 있다. 선착장에 내려 부두에서만 20분간 있을 수 있고, 화장실은 여객선을 이용해야 한다. 담배, 술 등은 금지된다.
■ 섬의 선착장에 방파제가 따로 없어 파도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북쪽에서 바람이 불어올 때는 섬이 한차례 바람을 막아 파도가 잦아드는데, 남서쪽에서 바람이 불어올 때면 접안이 힘들다. 울릉도를 출발할 때 잔잔했다가도 막상 독도 인근에서 접안이 위험해 섬만 한바퀴 돌고 가는 경우가 많다.
■ 울릉군독도관리사무소 (054)790-6645,6, 독도해운 9054)791-8111~4, 대아고속해운 (054)791-0801~3
■ 울릉도등대 가는길 카메라가 바빠졌다
울릉도를 처음 찾은 건 10년 전이었다. 20대의 뜨거운 열정 탓이었을까. 문득 망망대해 한가운데에 서고 싶었다. 뭍의 흔적 모두 사라진, 더 이상 기댈 곳 없는 막막한 그곳에.
울릉도 가는 배편에 난생 처음 가장 넓은 곳의 중심에 설 수 있었다. 뱃멀미에 머리가 아팠지만 그 때의 희열을 지금도 몸은 기억하고 있다.
독도를 가기 위해 반드시 경유해야 하는, 동해 쪽빛 바다에 한 점 보석처럼 떠있는 울릉도는 울창한 원시림과 화산이 빚은 독특한 기암괴석 등 태고의 신비를 간직한 섬이다.
울릉도를 제대로 느끼기에는 한땀 한땀 거닐며 땅과 호흡을 함께 하는 트레킹이 제격이다. 트레킹 천국 울릉도에서도 벼랑 위 눈부시게 빛나는 새하얀 등대를 찾아가는 2곳의 코스를 추천한다. 숲과 바다를 함께 느낄 수 있는 이 길에 서면 파도소리가 가슴을 쓸어내고 숲의 향기가 마음을 적신다.
■ 태하등대 오르는 길
울릉도의 모양은 언뜻 보면 여우의 얼굴이다. 섬의 맨 서쪽, 여우 얼굴 오른쪽 귓부리에 태하항, 태하마을이 있다.
태하마을에는 인주의 재료로 쓰이는 붉은 흙이 나오는 황토굴이 있고 울릉군 전 주민이 신성시 여기는 성하신당이 있다. 동남동녀 한 쌍을 모신 신당으로 이곳에선 매년 풍어를 기대하는 제사가 치러지고 새로운 선박이 출항할 때 진수식이 열린다.
태하등대 오르는 길의 시작이 이 성하신당이다. 마을의 좁은 골목길을 지나면 급경사의 비탈길이다. 늦여름 내리쬐는 뙤약볕을 피할 수 없어 숨이 턱턱 막힌다. 10분쯤 오르니 짧은 숲길이 이어진다. 잠시 초록의 그늘 속에서 땀을 식힐 수 있다.
길은 다시 깎아지른 벼랑가로 나갔다가 오징어 꿸 때 쓰는 시누대 터널을 지나고, 또 아름드리 동백과 후박나무로 뒤덮인 짙은 초록의 숲을 지난다.
길의 끝, 마침내 태하등대다. 한 바가지는 족히 될 땀을 흘렸지만 발걸음은 관사 옆 수도꼭지를 외면하고 등대마당을 지나 벼랑 위로 오른다. 대풍감(待風坎)의 장쾌한 풍경을 눈에 담기 위해서다.
멀리 현포항과 송곳봉, 바다 위의 코끼리바위 등이 펼쳐놓은 기암괴석의 풍경. 비취색 바다와 함께 어우러진 이 파노라마에 등대까지 오르며 흘렸던 땀의 수고로움이 말끔히 사라진다. 멀리 수평선에는 옅은 해무가 드리워 하늘과 바다의 경계가 흐릿하다. 등대 마당 한쪽에 심어진 동백나무의 빨갛고 단단한 열매에는 한여름을 달군 햇덩어리가 농축돼 있다.
성하신당에서 등대까지는 1.5km. 왕복 1시간 가량 걸린다. 울릉군은 태하마을의 황토굴에서 등대 입구까지 기슭을 오르는 관광모노레일을 설치중이다. 내년 초 모노레일이 완공되면 땀의 노력 없이도 대풍감의 비경을 맛볼 수 있게 된다.
■ 행남등대 해안산책로
울릉도 관광의 시작과 끝은 도동항이다. 모든 여객선과 유람선이 이곳에 모여들기 때문이다. 여객선터미널 바로 뒤로 해안절벽을 낀 아름다운 산책로가 이어진다. 간혹 계단을 타고 오르락 내리락 해야 하지만 가족이 함께 거닐 수 있는 쉬운 코스다. 2km 되는 이 탐방로는 쉬엄쉬엄 2시간이면 충분하다.
발 밑으로 철벅철벅 바닷물이 치고 올라오는 이 길은 파도와 긴 세월이 빚어낸 기암절벽과 바위굴을 지난다. 해안길 중간쯤엔 작은 석굴이 있다. 이곳에는 석간수를 담아내는 빨간 고무대야가 있다. 한 모금 떠 마시니 입안이 개운해진다.
40분쯤 걸으면 해안길의 끝. 이제부터는 숲길이다. 나무들 사이로 조금 접어들었는데도 매미의 울음소리가 큰 파도처럼 엄습한다. 시누대 터널을 지나 아름드리 곰솔을 스치며 터덕터덕 오르니 행남등대다.
등대 뒤편 전망대에선 저동항이 한 눈에 내려다 보인다. 촛대봉을 끼고 길게 이어진 방파제 안에는 오징어잡이 어선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다. 저동의 앞바다는 다소곳이 누운 관음도와 죽도가 풍경에 평화로움을 선사한다.
■ 울릉도 일주도로 '미완의 4.3km'
울릉도의 길처럼 역동적인 도로도 없을 것이다. 비죽 솟은 화산섬에 난 길이다 보니 30~40도의 급경사 길은 흔하고, 휘어짐도 360도가 모자라 한 바퀴 반, 두 바퀴씩 휘감아 오르기 일쑤다.
주민의 숙원사업인 해안일주도로는 1963년 공사를 시작했지만 아직도 총 길이 44.3km에서 4.3km(섬목-내수전)가 남았다.
일주도로 해안 곳곳은 터널로 연결됐다. 그 터널중 2곳(통구미터널, 수층터널)에 울릉도에는 유이(有二)한 신호등이 있다. 터널 길이는 길고 터널 폭은 1차로라, 반대편에서 차가 나올 때까지 신호를 기다려야 한다.
관광버스나 택시를 이용해 일주도로 관광에 나설 수 있다. 관광버스는 1인 1만8,000원. 택시는 하루 대절 요금이 15만원 선이다.
시간대를 잘 맞추면 주민들이 타고 다니는 일반 버스를 이용할 수도 있다. 도동을 출발한 버스는 남양 추산 천부를 거쳐 나리분지까지 운행한다. 우산버스 (054)791-2179
울릉도로 가는 배는 포항과 묵호(동해)에서 탈 수 있다. 묵호의 한겨레호(2시간 30분)는 오전 10시 출발, 포항의 썬플라워호(3시간)는 오전 10시 출발하고 나리호(6시간)는 오후11시40분 출발한다. 묵호-울릉간 씨플라워호(3시간)는 부정기운행한다. 묵호여객선터미널 (033)531-5891, 포항여객선터미널(대아고속해운) (054)242-5111, 포항여객선터미널(독도관광해운) (054)254-1700
울릉도=글ㆍ사진 이성원기자 sungw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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