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꽂집입니다.”(꽃집 주인 A씨)“팩스로 요청한 통신자료를 왜 보내주지 않는 겁니까”(경찰) “여기는 꽃집인데요. 제발 팩스 좀 그만 보내주세요.”(A씨)
경찰 검찰 기무부대 등 수사기관과 관세청 특허청 등이 범죄 혐의자의 인터넷 접속 IP 정보를 요청하는 문건을 1년 6개월 넘게 해당 인터넷 포털 업체가 아닌 꽃집으로 보낸 어처구니 없는 일이 벌어졌다.
30일 경찰에 따르면 2005년 8월 이후부터 최근까지 경찰이 포털업체에 수사 협조를 요청하는 ‘통신자료 제공 요청서’ 4,000여 건이 서울 여의도의 한 꽃집 팩스로 전송됐다.
전국 경찰서에서 보낸 문건에는 범죄 혐의자의 성명과 주민등록번호, 범죄 내용, 담당 수사관의 인적사항이 담긴 신분증 사본과 연락처 등이 적혀 있다.
꽃집 주인 A씨는 처음 문건을 받았을 때는 잘못 보낸 것이겠거니 생각했지만 이후 많게는 하루에 3, 4건, 분량도 5, 6장에 달하는 문건들이 쏟아지면서 업무를 보지 못할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A씨는 “팩스의 취소 버튼을 눌러봤지만 계속 보내오니 어쩔 도리가 없었다”며 “빨리 요청한 자료를 보내 달라는 독촉 전화도 걸려왔다”고 말했다.
밀려오는 팩스 때문에 골머리를 앓던 A씨는 뒤늦게 인터넷 포털 업체 네이버의 팩스번호 7자리가 자신의 꽃집 팩스 번호와 지역번호만 다를 뿐 똑같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2005년 8월 네이버 본사는 경기 성남시 분당구로 옮겼고, 전화번호는 그대로인 채 지역번호(02→031)만 바뀌었다. 그러나 경찰이 습관적으로 팩스를 보내면서 바뀐 지역번호를 누르지 않는 바람에 네이버와 팩스 번호가 같은 서울 꽂집으로 전송된 것이다.
A씨는 결국 지난해 8월 전송된 문건을 들고 직접 경찰서 민원실을 방문, 팩스를 그만 보내 달라고 통사정을 했다. 경찰은 “관련 기관에 공문을 보내 시정하도록 하겠다”고 약속했지만 팩스는 지금도 계속 들어오고 있다.
경찰은 지금도 A씨의 신고를 받으면 순찰차를 보내 팩스를 되가져 가고 있다. A씨는 “문건에는 범죄 혐의자의 신상 뿐만 아니라 수사 내용 등 온갖 정보가 다 있다”며 “꽃집 팩스길래 망정이지 나쁜 사람한테 들어갔으면 어쩔 뻔 했느냐”고 말했다. 경찰은 일선 경찰서와 관련 기관에 바뀐 포털업체 전화번호를 공지하는 공문을 지속적으로 보낼 방침이다.
박원기기자 on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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