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연 우연의 일치였을까. 지난해 8~10월 국가정보원과 국세청이 동시에 이명박 한나라당 대선 후보의 재산 검증 작업을 벌였던 것으로 드러나면서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한 국가기관의 조직적인 이 후보 사찰 의혹이 갈수록 짙어지고 있다.
국세청이 이 후보의 재산 검증에 나선 것은 지난해 9월이었다. 국세청 조사국 조사1과 5계 직원들은 9월25일 이 후보와 가족, 친인척 등 11명의 관련 자료를 조회하고 이를 근거로 이 후보의 재산 차명 은닉 등 여러 의혹에 대한 검증 작업을 진행했다.
예사롭지 않은 부분은 검증 시점이다. 국정원이 이 후보 재산 검증 작업을 진행했던 시기와 겹치기 때문이다. 국정원 부패척결 태스크포스(TF) 소속 5급 직원 고모씨는 같은 해 8월 행정자치부 지적 전산망을 통해 이 후보의 처남 김재정씨의 부동산 관련 자료를 조회했다. 국정원의 공식 해명자료에 따르면 고씨는 이 자료들을 근거로 10월까지 검증작업을 벌인 것으로 돼 있다.
특정 정치인, 그것도 야당의 유력 대선 후보로 떠오르고 있던 이 후보의 재산 검증 작업에 대표적인 국가 사정기관 두 곳이 그것도 비슷한 시점에 동시에 뛰어들었다는 부분은 우연이라고 보기에는 석연치 않은 대목이다.
검증 대상의 범위도 심상치 않았다. 국세청의 검증 대상은 그야말로 전방위였다. 국세청은 소득세, 증여세, 부가가치세 신고자료와 주식 보유 자료, 골프장 회원권, 자동차 보유 현황, 고급주택 보유 현황, 부동산 취득 및 양도 자료, 종합토지세 자료에 이르기까지 전방위로 확인 조사를 벌였다.
검찰은 13일 이 후보의 도곡동 땅 차명 보유 의혹과 관련된 중간수사결과를 발표하면서 2001년부터 올해 7월까지 국세청의 이 후보와 친인척 관련 기록 조회 건수가 100여건이었다고 밝혔다. 여러 정황으로 미뤄 보면 이 중 상당수가 지난해 9월25일에 집중적으로 이뤄졌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국정원도 이미 2005년말과 2006년초 두 번씩이나 TF를 만들어 이 후보가 시장으로 재직 중이던 서울시와 관련 기관에 대한 검증 작업을 벌인 바 있다. 부패척결 TF의 이 후보 검증 작업까지 더 하면 국정원은 1년 동안 무려 세 차례나 이 후보에 대한 검증작업을 한 것이다.
국세청이 검증 작업에 착수한 배경도 의심스럽기는 마찬가지다. 국세청 직원들은 검찰 조사에서 “당시 상급자가 이 후보의 재산 관련 의혹이 담긴 자료를 들고 와 분석을 지시했다”고 말했다.
이 근거자료를 작성한 것으로 알려진 세원정보과는 청와대 민정수석실이나 검찰의 범죄정보과 등과 마찬가지로 탈세 의혹 등 중요 정보를 생산ㆍ배포하는 부서다. 경우에 따라 정권 심층부의 하명자료나 다른 기관이 작성한 자료가 넘어와 검증이 이뤄졌을 수도 있다는 얘기다.
이와 관련, 검찰은 일단 국세청의 이 후보 관련 자료 조회가 “업무와 관련해 이뤄진 것”이라고 결론짓고 수사를 종결한 상태다. 실제 검증 작업에 참여한 국세청 직원들은 기록 조회 권한을 갖고 있으며, 보고서 등을 외부로 유출한 정황도 드러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또 탈세 의혹 검증 작업은 국세청의 고유 권한이다. 즉‘형식적’인 불법성은 밝혀지지 않았다는 얘기다.
그러나 국정원의 조직적인 이 후보 사찰 의혹에 대한 검찰 수사라는 변수는 아직 남아있는 상태다. 수사 결과 국정원의 조직적 사찰 사실이 확인될 경우 국세청의 전방위 조사 배경에 대한 새로운 의혹이 제기될 가능성이 있다. 국가기관에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배후세력의 존재 여부가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를 수 있다는 의미다.
박진석기자 jseok@hk.co.kr전성철기자 foryou@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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