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학의 거두 피터 드러커는 자동차 산업을 '산업 중의 산업'이라고 했다. 한국에서도 자동차는 반도체, 조선, 철강을 능가하는 최대 업종이다.
미국 빅3가 퇴조하고 일본의 뉴 빅3가 부상하는 등 글로벌 자동차 시장은 한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운 형국이다. 올해를 '글로벌 리더 도약의 원년'으로 선언한 현대ㆍ기아차의 글로벌 빅4를 향한 야망과 과제를 점검해본다.
'사자가 될 것인가, 사슴이 될 것인가.' 지난 24일 현대차 이현순 사장은 한 모임 강연에서 사자와 사슴 사진을 보여줬다. 그가 남긴 생존을 위한 화두는 'rethink everything(모든 걸 고쳐 생각하라)'. 같은 날 다른 모임에서 이번에는 김동진 현대차 부회장이 글로벌 시대를 헤쳐나갈 전략을 고민했다. 미래를 고민하는 경영진의 모습은 안도감을 주지만, 자동차 업계의 현실은 '사슴'을 강요하고 있다.
거의 20년째 반복되는 파업, 수입차의 급증, 수명이 다한 듯한 애국심 마케팅. 여기에 원고와 엔저, 고유가 등 경영환경 악화는 새로운 전략을 요구한다. 일본을 걱정하기보다 빠르게 따라오는 중국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다.
이런 위기 속에서 한국의 자동차 업계에 어떤 기회가 있을까. 전문가들은 현대ㆍ기아차의 글로벌 경영을 통한 해외시장 공략에 분홍빛 기대를 걸고 있다.
닛산은 1970년대만 해도 도요타와 함께 일본 자동차 업계를 양분한 강자였다. 둘의 승패를 가른 요인의 하나는 글로벌화였다. 80년대 강성노조의 영국공장 신축 반대로 경영난이 가중됐고, 결국 프랑스 르노에 인수됐다.
올해 설립 40년이 된 현대차는 89년 캐나다 브로몽에 현지공장을 세운 뒤 주춤하다가 90년대 후반 터키, 인도에 진출, 시장 선점에 성공했다. 2000년대 들어 중국 미국 슬로바키아 체코 등에 해외공장, 해외연구소를 설립했다.
현대ㆍ기아차는 1조원 가량을 들여 2년 내 연산 30만대의 공장을 짓는 속보전략으로 글로벌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렇게 완공된 현지공장은 한국공장의 10배까지 되는 높은 생산성으로 글로벌 경쟁력의 원천이 되고 있다.
지난해 현대ㆍ기아차가 생산한 378만대 가운데 100만대가 해외에서 생산됐다. 미국 조지아공장과 체코공장이 가동되는 2009년에는 해외생산이 300만대까지 늘어나 국내생산분과 합치면 600만대 생산시대를 맞게 된다.
현대ㆍ기아차는 단순한 공장의 지리적 확대를 넘어 '가격대비 품질이 좋은 차(Value for Money)'를 만드는데 주력하고 있다. 5년 전 도요타의 한 인사는 가장 두려운 기업으로 2H를 꼽았다.
특유의 저돌성으로 따라붙는 현대차가 혼다와 함께 무서워 보인다는 얘기였다. 그의 엄살은 2년 뒤 일부 현실로 나타났다. 현대차는 2004년 초기품질지수(IQS)에서 도요타를 처음 따라 잡은 데 이어 작년에도 도요타보다 한단계 높은 3위를 기록했다.
또 현대차는 도요타가 주력하는 '하이브리드'보다 호평받는 '클린 디젤'에서 강자로 부상했다. 미국 경쟁업체보다는 6년, 디젤엔진을 갖고 있는 혼다보다도 3년 가량 앞서 있다는 평가다.
하지만 한국은 브랜드 역량이나 미래형 자동차기술에서 5년 정도 뒤처져 있고, 생산성에선 일본의 65% 수준에 불과하다는 점이 과제다. 도요타만 해도 현대차가 지난해 거둔 순이익의 6배가 넘는 10조원 이상을 올해 연구개발에 투자하고 있다.
자국 자동차 메이커를 보유한 나라는 미국 일본 독일 중국 한국 프랑스 이탈리아의 7개국에 불과하다. 이들이 보유한 15개 메이커 가운데 현대ㆍ기아차는 세계 7위에 올라 있다.
지금까지 미국에서 두 회사의 로고가 찍힌 차량만 700만대가 넘게 팔렸다. 그러나 10년 뒤 현대ㆍ기아차는 연생산 700만대를 넘는 빅4를 꿈꾸고 있다.
이태규 기자 tg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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