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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석 칼럼] '시사IN'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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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석 칼럼] '시사IN' 생각

입력
2007.08.30 0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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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장 몰래 발행인이 재벌 기업 관련 기사를 걷어낸 일로 경영진과 갈등을 빚은 끝에 집단 퇴사한 <시사저널> 기자들이 <시사in> 이라는 새 시사주간지의 창간을 준비하고 있다.

한 매체의 기자들이 그 제호만 포기한 채 새 매체로 고스란히 이동한 셈인데, 한국 언론 사상 초유의 일이다. 나라 바깥에서도 이런 일은 없었을 게다.

<시사저널> 사태의 발단이 자본의 편집권 제어 욕망이었던 만큼, <시사in> 은 최대 주주의 지분이 반을 넘지 못하도록 하고, 발행인이 편집인을 겸하지 못하도록 하며, 기자 대표가 이사회에 참여하게 하는 등 편집권 독립을 위한 제도적 장치를 여럿 마련하고 있다 한다. 이 새로운 매체가 어느 개인의 사유물이 되는 것을 막겠다는 뜻이다.

● 집단퇴사한 기자들의 새 매체

이 시점에서, <시사in> 의 앞날을 장밋빛으로만 상상하는 것은 신중치 못한 일일 게다. 물론 소유와 경영과 편집을 분리하고 자본구성을 다수의 소액주주가 감당하게 하는 것이 편집권 독립에 유리한 일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그것이 만병통치약이 될 수 없음은, 앞서서 그런 방식으로 태어난 매체들이 자본으로부터 완전히 독립하지 못했다는 것만 보아도 또렷하다.

지금 매체 편집권 일반을 위태롭게 하고 있는 것은 특정 매체자본가의 악의가 아니라, 모든 것을 집어삼킬 듯 세차고 촘촘한 자본운동 자체다. 자본구성을 잘게 나누고 사규나 정관으로 편집권을 강화한다 해도, 경영자가 늘 광고주의 압력을 거뜬히 이겨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탐사보도를 전문으로 하는 프랑스의 풍자 주간신문 <카나르 앙셰네> 는 그래서 광고를 아예 싣지 않는다. 수익을 오로지 신문 판매에만 의존하는 것이다.

많든 적든 광고를 싣게 되면 편집권이 광고주의 칼끝에서 자유로울 수 없으리라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그러나 광고를 싣지 않으려면, 매체의 판매 수익이 회사를 꾸려나갈 수 있을 만큼 많아야 한다. <카나르 앙셰네> 의 판매부수는 45만부 안팎이고, 8면의 얄팍한 신문인데도 한 부 가격이 1.2유로(1,500원 남짓)나 된다.

고작 두 장짜리 신문이 그 가격에 그리 많이 팔려나가는 것은, 독자들이 <카나르 앙셰네> 의 정보를 그만큼 심층적이라 판단하고 있기 때문일 게다. 너무 이상주의적이긴 하지만, <카나르 앙셰네> 의 예가 '독립'을 내세우는 언론의 한 지향점이 돼야 함은 분명하다.

편집권의 위기가 꼭 광고주한테서만 오는 것은 아니다. <시사저널> 사태 때 기자들이 일치단결해 경영진과 맞설 수 있었던 것은, 경영진의 행태가 상식을 크게 벗어났다는 판단을 공유했기 때문일 게다.

그러나 경영진과의 다툼이 아니더라도, 편집국 안에서 갈등과 반목은 언제든 생길 수 있다. 편집권이 편집국에 오롯이 속한다 쳐도, 편집국은 다양한 세계관의 구성원들로 이뤄진 집단 주체다. 기사 가치에 대한 편집국 구성원들의 서로 다른 판단이 민주적 방식으로 조율되고 수렴되지 않으면, 이내 파열음이 들릴 것이다.

구성원들의 이해관계도 서로 어긋날 수 있다. 사람 사는 곳 어디나 마찬가지다. 세계관과 이해관계가 늘 또렷이 분별되는 것도 아니다. 대의와 욕망은 흔히 뒤얽힌다.

● 용두사미보다는 일취월장을

새로운 출발을 다짐하고 있는 <시사in> 기자들에게 우울한 얘기를 늘어놓은 셈이 돼 죄송스럽다. 그러나 이들이 만들려는 것은 동창생이나 동호인들끼리의 동아리가 아니라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남아야 할 매체기업이고, 이 기업을 만들고 꾸려나갈 사람들은 산사의 수도승이 아니라 자본주의 사회의 욕망과 규율에 얽매여 있는 속인이다.

그 사회경제적-생물적 테두리가 헐겁게나마 <시사in> 의 최대치를 결정할 것이다. 너무 큰 기대는 실망으로 이어지게 마련이다. 용두사미보다는 일취월장이 좋다.

자본운동과 사람의 본성이 저널리즘에 그어놓은 경계를 <시사in> 이 본때 있게 뒤로 밀쳐냈으면 좋겠다. 먼발치에서나마, <시사in> 의 용기있는 동료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고종석 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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