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현상도 참 드물다. 하나는 모든 언론과 비평가들의 악평, 또 하나는 그들의 한결같은 호평.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란히 흥행에 성공한 두 영화. 굳이 우열을 나눈다면 오히려 전문가들로부터 악평을 받은 <디 워> 의 판정승이다. 디>
비평가들이 <디 워> 를 잘못 봤다고 할 수는 없다. 물론 민족주의, 애국심, 인간적인 호소, 교묘한 마케팅으로만 해석하려는 태도는 억지다. 아무리 그 힘이 컸다 해도 ‘800만 관객’을 설명하지는 못한다. 더구나 만약 미국에서까지 성공한다면. 대박 영화에는 분명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디>
비평가들은 <디 워> 에서 그것을 찾아보려 하지 않았거나, 과소평가 했는지 모른다. 디>
반면 일부 네티즌들은 그 중 하나에만 함몰돼 영화로서 <디 워> 의 객관적 평가를 의도적으로 외면한 측면도 있다. ‘이런 영화는 컴퓨터그래픽 특수효과만 좋으면 됐지 뭐가 문제냐’는 극단적 시각이 그 예다. 디>
한편 <화려한 휴가> 의 평가에는 혼동이 자리잡고 있다. 화려한>
그것은 영화가 다루고 있는 사건, 아니면 영화를 만든 사람의 이미지와 영화 차제를 동일시하는 우리사회 특유의 허위의식이다. 그것이 영화의 냉정한 평가를 방해한다. <화려한 휴가> 의 완성도를 비판하는 것은 곧 ‘5ㆍ18 광주민주화운동’을 부정하는 것으로 취급한다. 화려한>
그래서 보고 나서 “재미 없다” “저급하다”란 말을 입에 담지 못하며, 영화적 완성도에 시비를 걸지 못하며, 상업성을 위해 3류 코미디를 집어넣고도 마치 역사의식이 투철한 영화로 과장된다. <디 워> 열렬 팬 못지않은 눈에 안 보이는 장벽이다. 디>
어제 오늘 일도 아니다. 아직도 역사적 왜곡과 아픔이 시대 곳곳에 남아있는 우리로서는 늘 부채의식에 사로잡혀 있으며, 그것을 용감하게 선택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영화는 관대한 대접을 받는다. 그러나 결과는 어땠나.
소설가 손홍규의 말처럼 영화가 때론 진실을 섣불리 화석으로 만들거나, 영화평론가 문학산의 지적처럼 때론 역사의 아픔을 어설픈 코미디로 소비해 버리고 만다.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 <이재수의 난> 이 그랬고, <그때 그사람들> 이 그랬다. 그때> 이재수의> 아름다운>
<화려한 휴가> 역시 5ㆍ18을 처음으로 정면으로 다뤘다는 이유만으로 역사적 균형감각의 부족, 어설픈 영웅 만들기와 멜로 과잉, 그로 인해 실종된 중요한 사건배경까지 면죄부를 받았다. 화려한>
<디 워> 와 <화려한 휴가> 가 흥행에 성공했다고, 일반 관객들로부터 아니면 비평가들로부터 호평을 받았다고 이런 단점들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화려한> 디>
<디 워> 의 세계적 수준의 컴퓨터그래픽이 <용가리> 실패를 반성한 7년의 각고 끝에 나왔듯이 심형래는 겉핥기나 어설픈 모방이 아닌 깊이 있는 인간 탐구와 탄탄한 서사와 정교한 디테일에 땀과 노력과 시간을 쏟아야 한다. 노근리사건을 다룰 <작은 연못> 과 <삼청교육대> 는 영화적 재미와 사건의 진실을 어떻게 조화시킬까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삼청교육대> 작은> 용가리> 디>
흥행에 성공한 작품일수록 냉정하게 되짚어보고 다음에 보다 높은 완성도를 추구하지 않는 한 한국영화는 누구의 어느 작품이든, 언제든지 다시 곤두박질칠 수 있다. <실미도> 의 성공만을 믿고 안이하게 만든 <한반도> 를 보면. <디 워> 와 <화려한 휴가> 가 한국영화에 남긴 것이 ‘자만’이라면 정말 큰일이다. 화려한> 디> 한반도> 실미도>
이대현 기자 leedh@hk.co.kr
■ '디 워' 놓고 네티즌 vs 평론가 격돌
이래야 했다.
한쪽에서 시네마베리테(영화의 기록성을 강조하는 사실주의 경향)를 내세우며 리얼리즘을 논하면, 다른 편은 베리만의 영화를 들이대며 철학적 사유의 깊이를 보여줘야 했다. 그게 영화평론의 세계였다. 공격에는 격(格)이 있었고, 받아 치는 수비에도 어엿한 식(式)이 존재했다. 하지만 세상이 바뀌었다.
‘인터랙티브(interactive)’한 인터넷 세상이 열리면서 평론가와 관객의 구분이 무의미해졌다. 영화평론이라는 담론의 공간은 이제 아카데믹한 고담준론과 ‘욜라 짱나는’ 인터넷 언어가 격돌하는, 이종격투기의 링이 됐다.
<디 워> 는 그런 격투가 사회를 들끓게 하는 빅매치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줬다. 영화라는 매체와 인터넷이라는 생활수단이 모두 광범위한 대중성을 갖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메커니즘은 이렇다. 디>
심형래 감독에 대한 ‘짠한’ 마음이 있는데 ‘먹물’들이 가혹할 정도로 비판을 해대니 욱하는 심리가 발동했다. 예전 같으면 그냥 속으로 삭이고 말았을 텐데, 인터넷을 통해 자신의 의견이 다수임을 확인하고는 용기가 생겼다. 인터넷이 가진 익명성은 그런 용기를 언어 폭력 또는 사이버 테러의 형태로 분출케 했다.
빅매치의 핵심에 있는 진중권 중앙대 겸임교수는 이 현상을 “이른바 ‘대중지성’이라는 게 얼마나 허망한지를 보여주는 것”으로 파악했다.
“제대로 된 계몽 없이 계몽의 시대는 끝나고, ‘우리를 가르치려 하지 마라’는 반지성주의만 팽배해졌다”는 것이 진 교수의 설명이다. 그리고 그것이 대중적 환상의 아이콘인 심형래 같은 인물에 대한 비판을 만나 공격적으로 표출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나 네티즌이 수용자의 입장에서 벗어나 적극적인 영화담론 생산의 주체로 나서는 것은 되돌릴 수 없는 흐름이다.
영화평론가 오동진씨는 “네티즌의 반응은 영화를 누구보다도 사랑했음에도 평론가들에 의해 무식한 대중으로 규정된 데 대한 관객의 반발심리”라며 “네티즌에 맞서기보다는 대중이 할 수 없는 전문화ㆍ특성화된 평론으로의 역할 전환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유상호 기자 shy@hk.co.kr
■ '디 워' 궁금한 두세가지 것들
먼저 제작비. 300억원으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 순제작비는 315억원 정도. 막판 작품 손질에 돈이 더 들어갔다.
315억원이라고 해도 한국영화사상 최대 규모인 이 돈을 심형래는 어떻게 마련했을까. 그야말로 가능한 한국영화 투자방식을 다 동원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개인투자(27억원)에 심 감독과 가까운 사람들(30억원), 금융권(현대스위스저축은행과 에이스저축은행)의 176억원, 우수제조기술연구를 위해 산업자원부가 지원한 8억원, 여기에 막판 가세한 충무로 영화투자사 KTB(10억원)와 배급사 쇼박스(60억원).
그럼 누가 얼마나 이득을 보게 될까. 국내 상황으로만 보면 가장 큰 수혜자는 막차를 탄 쇼박스. 1,200만명이 들어야 마케팅비를 포함한 총제작비 360억원을 국내극장 상영으로 건지는 <디워> 는 아직 적자다. 디워>
그렇지만 쇼박스는 배급수수료 20여억원(800만명 기준)을 챙긴다. 물론 투자자로서 국내 부가판권수익, 해외흥행수익의 10%도 확보해 놓았다. 여기에 비록 미국 메이저배급사와의 계약에 실패했지만 영구아트와 공동 배급자로서 영구아트 수익의 7.5%를 배급수수료로 챙긴다.
물론 전체적으로 보면 가장 큰 수혜자는 영구아트이다.
마케팅을 미국배급사인 프리스타일이 맡아 상대적으로 적은 비율(30%)의 흥행수익을 받는다고 해도 그 가운데 제작사 지분 40%를 챙긴다. 문제는 미국의 흥행여부. 예상외로 부진할 경우 DVD 매출까지 줄어드는데다 저축은행의 투자가 차입금 형식이어서 수익에서 그 돈을 갚아야 하는 심형래로서는 ‘실속 없는 잔치’가 될 위험도 있다.
남은 과제는 해외, 특히 미국에서의 흥행.
국내상영과 아시아시장으로 제작비를 건진다는 목표를 달성한 <디 워> 는 그야말로 미국에서 벌어야 할 입장. 때문에 심형래도 일찌감치 15일 미국으로 건너가 프리스타일과 막판 배급, 마케팅전략을 짜는데 신경을 쏟고 있다. 전망이 어둡지는 않다. 디>
마침 9월14일 개봉하는 다른 큰 영화가 없는데다 국내 논란과 흥행으로 미국에서 인지도도 높아졌기 때문이다. 문제는 첫 주말 영화를 본 관객들의 반응.
비슷한 규모인 1,680개 스크린에 개봉해 첫주 578만 달러를 번 프리스타일의 최고 흥행작 <아메리칸 혼팅> 과 비슷한 성적만 올려줘도, DVD 시장의 경쟁력이 높은 <디 워> 로서는 최소 200억원 이상의 순익을 올릴 수 있다. 디> 아메리칸>
이대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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