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택순(55) 경찰청장 퇴진을 요구한 황운하(45ㆍ경찰종합학교 총무과장) 총경에 대해 29일 ‘감봉 3개월’의 경징계가 내려짐에 따라 ‘청장 퇴진’ 파문이 수습 국면에 접어들 전망이다.
경찰의 자존심과 명예를 떨어뜨린 이 청장은 물러나야 하며 징계 자체가 잘못인 만큼 어떠한 징계가 나오더라도 모든 법적 대응하겠다며 반발했던 황 총경도 향후 대응 수위를 낮출 것으로 보인다.
조직의 기강을 무너뜨렸다는 이유로 해임 등 중징계를 밀어붙였던 이 청장이나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권도 이해하지 못하는 등 철학에 문제가 있다고 쏘아 붙인 황 총경의 언행을 고려할 때 이날 징계위는 다소 싱겁게 끝났다는 게 경찰 안팎의 평이다.
그러나 상처는 쉽게 아물지 않고 후유증도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 무엇보다 임기가 6개월(내년 2월) 남은 이 청장의 리더십이 크게 흔들리게 생겼다. 황 총경에게 본때를 보이겠다는 이 청장의 의지는 확고했다. 이 청장은 징계위 개최를 요구하면서도 직접“중징계 해 달라”는 의견을 전달했다.
중앙징계위원회는 그러나 총수의 뜻을 거스르면서까지 경징계를 결정했다. 이는 경찰 안팎에서 거세게 일고 있는 ‘보복 징계’라는 비판이 영향을 끼쳤다는 분석이다.
남형수 감사관은 브리핑에서 “여론의 비판이 징계 수위 결정에 영향을 줬느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답했다. 징계위에 참석한 한 경찰 간부도 “안팎에서 저렇게 시끄럽게 문제를 제기하는데 중징계 했다가 뒷감당을 어떻게 하려고…”라고 말했다.
갈갈이 찢어진 경찰 조직의 결속력을 다시 봉합하는 것도 큰 숙제다. 또 다른 경찰서의 하위 직원은 “사실 황 총경 징계를 반대했던 경찰 민심은 윗자릿수 늘리는 데만 관심 많고 일선 경찰서의 감축된 인원 충원 등은 신경도 안 쓰는 지휘부에 대해 쌓인 불만이 응축된 것”이라며 “경징계로 적당히 덮고 가기에는 앙금이 너무 크다”고 말했다.
일부에서는 이날 내려진 ‘감봉 3개월’은 청와대와 이 청장, 그리고 황 총경이 사전에 입을 맞춘 결과라는 해석도 내놓는다. 청와대는 징계위가 열리기 전 “하극상은 용서할 수 없다”며 “황 총경에 대한 징계는 적절하다”는 식으로 이 청장에게 힘을 실었다. 이 청장은 징계위의 결정에 두 말 없이 ‘사인’을 했다.
황 총경 역시 징계위에서 “다수의 다른 의견이 있을 수 있다”며 잘못을 인정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징계위에 보낸 반론문에서 "(경찰청장이) 징계권을 함부로 휘둘러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고 건강한 내부비판을 억압 하려하고 있다"고 비난했던 데 비하면 꼬리를 내린 셈이다.
황 총경 징계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이날 저녁 모이기로 했던 경찰대 총동문회가 징계 결과 발표 전 모임을 취소한 것도 사전 교감설을 뒷받침한다.
시내 일선 경찰서의 한 경장도 “청와대와의 사전 교감설이 나도는 데에는 충분한 이유가 있다”며 “청와대 교감설이 확산될 경우 연말 대선에서 국민들로부터 경찰의 중립성마저 의심을 살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박상준 기자 buttonp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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