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것이 아름다운 시대는 끝났다."
중견 그룹들의 '몸집 불리기'가 한창이다. 재벌급 기업들의 전유물로만 여겨졌던 인수ㆍ합병(M&A)을 적극 추진하면서, 기업구조조정 시장의 핵으로 부상하고 있다.
이유는 신성장 동력의 탐색. M&A를 통해 '규모의 경제'를 이루지 않고는 시장에서 밀려날 수도 있다는 위기감이 중견 그룹들의 세 확산을 부추기고 있다.
M&A시장의 대표 중견기업은 철인3종 경기를 즐기는 유경선 회장이 이끄는 유진그룹. 지난해 대우건설 인수전에 뛰어들어 유력 후보로까지 거론되며 재계의 주목을 받았던 유진그룹은 올해 금융회사와 유통업체를 잇따라 인수, 그룹 면모를 빠르게 갖춰가고 있다.
유진그룹은 올해 초 국내택배 부문 5위 업체인 로젠과 중견 증권사인 서울증권의 경영권을 확보한데 이어, 최근에는 매출 620억원의 한국통운을 인수했다. 또 로또복권 2기 사업자로 선정된 '나눔로또'의 컨소시엄을 주도하며 외연을 빠르게 확장하고 있다.
동양그룹의 행보도 만만치 않다. IMF이후 금융부실로 힘겨운 시절을 보냈던 동양그룹은 창사 50주년을 맞아 그룹의 사업구조를 금융-제조-건설ㆍ레저로 3분화하며 몸집 불리기에 한창이다.
동양은 연초 한일합섬을 인수, 대단위 건설 시공권과 부동산 및 레저시설을 확보했다. 특히 최근엔 부도난 신일건설까지 흡수하며, 동양메이저 및 한일합섬의 건설부문과 통합한다는 구상을 갖고 있다.
비정규직 직원 대량해고 문제로 시끄러운 이랜드 그룹도 1980년대 중소 의류업체에서 적극적인 M&A로 유통업의 새로운 강자로 부상했다. 2004년 뉴코아, 2005년 킴스클럽에 이어 지난해 한국까르푸를 전격 인수하며 그룹의 자산규모(2006년 기준)를 4조6,000억원으로 불렸다. 올해 말까지 해외 유명 브랜드를 인수한다는 계획을 발표해 M&A의 영역을 해외로 넓히고 있다.
대우종합기계(현 두산인프라코어) 오리온전기 대우정밀 극동건설 등 인수전에서 잇따라 패배를 맛본 효성은 최근 자동차 할부금융사인 '스타리스'를 전격 인수하며 명예회복에 나섰다. 또 그룹 주력상품인 스판텍스 생산업체인 동국무역 인수전에 뛰어들 채비를 하고 있다.
90년대 자본금 5,000만원의 칠산해운으로 시작한 C&그룹은 세양선박, 우방건설, 동남아해운, 아남건설 등을 차례로 인수하며 15년만에 매출 1조8,000억원짜리 중견 기업으로 성장했다. M&A의 귀재란 평가를 듣는다.
이처럼 중견 그룹들의 M&A가 활발한 것은 '신성장 동력찾기'의 일환이다. 신규사업진출이 여의치 않은 상황에서 차세대 먹거리를 찾고 보유업종을 재편하려면 결국 구조조정시장에 나온 기업들을 인수할 수 밖에 없다.
실제로 60년대 제과점으로 시작한 유진그룹은 연쇄적 M&A를 통해 금융ㆍ건설그룹으로 변신했고, 의류업체였던 이랜드그룹도 대형 유통업체로 옷을 갈아 입는데 성공했다.
게다가 대그룹이 '문어발 확장'이라는 비난 때문에 M&A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한 점도 중견그룹의 인수합병 행보를 재촉했다. 삼성이나 현대차 그룹, LG, SK 등 대기업들이 국내에서 사들일만한 기업이 없다는 점도 'M&A의 마이너리그'를 키운 원인이 됐다.
하지만 이들의 확장에 대한 우려도 없지 않다. 무리한 팽창전략은 항상 화를 초래하는 법이기 때문이다. 개발연대가 그랬고, IMF때도 그랬다. 한 업계 관계자는 "몇몇 기업들의 경우 좀 무리한 팽창이라는 느낌도 든다"며 "채권단 통제가 어려운 상태에서 제어 없는 확장은 큰 손실을 가져올 수 있다"고 말했다.
손재언 기자 chinas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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