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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대의 명저 50] <34> 장하준의 '사다리 걷어차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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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대의 명저 50] <34> 장하준의 '사다리 걷어차기'

입력
2007.08.30 0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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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외환위기 이후 우리 사회에는 일종의 ‘선진국 콤플렉스’가 무섭게 휘몰아쳤다.

당시 경제 위기가 다름아닌 우리의 잘못된 시스템 때문에 일어났다는 인식이 지배적이었고 이를 벗어나고자 그동안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던 소위 ‘글로벌 스탠더드’라 불리는 선진국의 제도를 트집잡지 말고 받아들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사회 전반에 높아지기에 이른다.

이러한 움직임은 결과적으로 우리 것은 무조건 나쁘다는 의식을 심어주기에 이르렀고 급기야 모든 분야에서 ‘외국’‘선진국’이라는 명패가 붙으면 설령 문제가 있더라도 마치 면죄부를 받은 것처럼 사회는 입을 다물게 됐으며, 선진국들이 주장하는 자유무역과 시장중심경제는 ‘복음’처럼 받아들여졌다.

장하준(44) 영국 케임브리지대학 경제학 교수가 미국, 영국 등 선진국들이 우리와 같은 중진국과 개발도상국들에 일종의 ‘사기’를 치고 있다고 항변한 <사다리 걷어차기> (원서 ‘Kicking away the ladder’ 2002년 영국 발행ㆍ한국어판 2004년ㆍ부키 발행)는 비록 한국의 이와 같은 특이한 상황과 시대적인 배경을 감안해 만들어진 책은 아니지만 선진국의 위선을 경계해야 하는 시기에 적절한 경종을 울렸다는데 큰 의미가 있다.

장 교수는 이 책의 한국어판 서문에서 “선진국의 위선을 지적한다고 해서 선진국에서 배우지 말자는 것이 아니지만, 아직 선진국이 되지 않은 입장인 우리나라가 선진국들이 소위 글로벌 스탠더드로 내세우며 우리에게 강요하는 것들을 그대로 따르기보다 그들이 우리와 비슷한 단계에선 어떤 정책을 썼는지 잘 살펴야 한다”고 말한다.

<사다리 걷어차기> 에 이어 <쾌도난마 한국경제> <국가의 역할> <개혁의 덫> 등 국내에서 출간된 장 교수의 저서 대부분을 낸 출판사 부키의 박윤우 대표는 “ <사다리 걷어차기> 는 지금까지 공식, 시험 위주로 도식화되어 마치 자연과학처럼 받아들여지던 경제학의 틀을 깨준 책”이라며 “이 책은 막연하게 일반인이 생각하던 의문, 어째서 우리는 외환위기를 맞아야 했나, 혹시 선진국이 우리에게 사실을 말하는 게 아니지 않을까 하는 것들에 대해 거의 처음으로 해답을 제시했다”고 말한다.

신자유주의와 자유무역, 그리고 시장의 절대적인 역할을 맹신해온 일반인에게는 거의 코페르니쿠스적인 발상으로 다가온 견해가 담긴 책이라는 것이다.

2005년 장 교수에게 레온티에프상을 수여한 미 터프츠대는 “장 교수의 이 저서는 가난한 국가의 경제발전 과정에서 나타나는 국가의 역할과 세계화에 대한 비판적 고찰로 개발경제학의 지평을 넓혔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사다리 걷어차기> 에서 사다리는 누군가가 손쉽게 정상에 올라갈 수 있도록 고안된 제도를 뜻한다. 누가 되었든지 이 사다리를 이용해 정상에 오르면 두 가지 선택 앞에 선다.

뒤에 올라올 사람을 위해 사다리를 그대로 둘 것인지. 아니면 사다리를 걷어차 후발 주자의 추격을 따돌릴 것인지. 장 교수는 미국, 영국 등 선진국들은 자국이 부자가 되는 과정에서 썼던 각종 정책인 사다리를 후진국들에게는 ‘옳지 않은 방법’이라고 속이며 걷어차는 행동을 해왔다고 이 책을 통해 주장한다.

즉 현재 선진국들이 금과옥조처럼 그 쓰임새를 과장하는 시장 중심의 자유무역은 선진국으로 도약하는 사다리가 아닌 것은 물론이며, 그들이 그토록 옳지 않다고 방점을 찍는 보호무역이야말로 그들이 부자가 되기 위해 과거 사용하던 사다리라고 장 교수는 고발한다.

책은 크게 3부로 나뉜다. 장 교수는 우선 선진국의 과거 산업, 무역, 기술 정책들이 어떠했는지 보여준다.

그는 정부의 뚜렷한 시장개입 없이도 경제발전을 이룩한 것으로 알려진 영국의 이야기가 사실은 허구라는 주장과 함께 시작한다. 자국 산업이 피해를 보지 않고 온실 속에서 잘 자라도록 영국의 여러 왕조는 중세 때부터 보호무역에 주력했다.

급기야 나폴레옹 전쟁이 막을 내린 1815년께는 보호무역으로 키운 힘을 믿고 주변국에 ‘페어 플레이’ 를 주장하며 자유무역을 요구한다.

현대의 선진국들의 행태와 비슷하다. 이밖에 미국이 절묘하게 관세율을 조정하며 자국 업자들을 육성하고 개발도상국에는 반대의 정책을 요구해온과정을 이 책은 역사적으로, 실증적으로 보여준다.

저자는 결론적으로 보호무역이라는 사다리가 미국, 영국 등 선진국들의 전유물로 사용됐으며, 개발도상국에 던져진 신자유주의라는 ‘멋진 신세계’는 결코 경제성장을 담보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말한다.

장하준 교수의 논지는 뚜렷하다. 그는 “외환위기 이후 우리 경제에 처방된 구조개혁 프로그램의 핵심인 시장 원리의 확대는 성장과 분배 모두에 악영향을 미쳤다”고 말磯?

그의주장은 미국이 아닌 유럽에서 경제학을 공부한 이유로 보다 진보적이긴 하지만, 국가나 재벌의 역할을 강조하고 이들을 신랄히 비판하지 않는 측면에서는 보수적이다. 때문에 참여정부 이후 그의 글은 좌우를 막론하고 읽힌다.

그의 붓끝은 시종일관 신자유주의를 겨냥한다. 한국경제의 대안으로 여겨져온 이 마술램프에 대해 <사다리 걷어차기> 는 물론 최근 영국에서 출간한 <악한 사마리아인> 까지 그의 글은 날카로운 일침을 들이대고 있다.

●장하준 연혁

1963년 서울생

1986년 서울대경제학과졸업

1987~91년 영국케임브리지대경제학박사(제도경제학전공)

1990년~ 케임브리지대경제학교수

2003~04년 고려대교환교수

2004년 (사다리걷어차기)로‘뮈르달상’ 한국인첫수상

2005년‘레온티에프상’ 역대최연소수상 ▦저서 <사다리 걷어차기> <쾌도난마 한국경제> <개혁의 덫> <국가의 역할> <악한 사마리아인> 등

양홍주기자 yanghong@hk.co.kr

■ 장하준의 쾌도난마, 한국학계선 왕따?

장하준 교수를 이야기할 때 먼저 거론되는 것이 그의 집안 배경이다.

장재식 전 산업자원부장관의 아들이고 장하석 런던대 교수의 형이자, 장하진 여성가족부장관과 장하성 고려대 경영대 학장의 사촌이라는 가계. 하지만 이런 후광을 고려하더라도 그가 국내 순수학문 분야에서 전인미답의 길을 걷고 있는 젊은 학자라는데 반론을 제기하기는 힘들다.

그가 국내외 경제학계의 주목을 본격적으로 받기 시작한 것은 2004년 이 책 <사다리 걷어차기> 로 제도 경제학 서적 가운데 가장 뛰어난 책에 주어진다는 ‘뮈르달 상’을 받으면서부터.

세계적인 경제학자의 반열에 올랐음을 증명하는 이 상과 함께 2005년에는 ‘레온티에프 상’이 40대 초반의 학자에게 주어지는 것을 본 국내 경제학계는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그것은 시장을 가장 우선시하는 자유주의 무역을 교과서처럼 받아들이던 당시 한국사회 분위기에 가해진 충격이기도 했다.

장 교수는 27세의 젊은 나이에 영국 케임브리지대 강단에 섰다. 박사학위 준비 중 석사장교로 병역을 마치는 등 학업에 대한 남다른 노력이 없었다면 얻을 수 없는 결과였다. 케임브리지대 강의 첫날 일화는 그의 면모를 알 수 있게 한다.

1990년 강의를 준비하던 그는 아무래도 영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학생들 앞에 나서서 막히지 않고 할 말을 다 할 수 있을까 하고 자문했다. 결국 그는 2시간 이상 진행할 강의의 모든 내용, 예상 질문에 대한 답변까지를 토씨 하나 빼놓지 않고 외우는, 완벽한 준비를 하고 강단에 섰다.

하지만 <사다리 걷어차기> 를 비롯한 여러 저서에서 그가 보여준 기존 경제학의 틀에 대한 정교한 도전에도 불구하고, 막상 국내 학계에서 그에 대한 긍정적 평가를 찾아보기란 쉽지 않다. 국내 유수의 대학들이 그를 끌어들이려는 노력을 보이지 않는 것도 사실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왜 그럴까. 거기 대해서는 “시장에서 국가의 역할을 강조하는 비주류적인 장 교수의 생각이 국내 주류 학자들에게는 영 못마땅하게 들렸으며, 소액주주운동을 비판하면서 ‘박정희 정권 식 경제’를 옹호하는 모습을 보여 일종의 왕따를 당해온 게 사실”이라는 말이 설득력 있어 보인다.

자국의 입장을 위해 후진국의 발전을 막아서는 선진국들을 ‘역사적 위선자’로, 그들의 행태를 ‘이중잣대’로 질타하면서, ‘국제적 구타’의 사슬을 끊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젊은 경제학자 장하준에 대한 평가는 아직 현재진행형인 셈이다.

양홍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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