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강전을 앞두고 북한 청소년대표팀의 주장 안일범은 “나라 이름이 공을 차는 건 아니잖아요”라고 큰소리쳤다.
상대는 17세 이하 청소년월드컵에서 두 번(1991, 2003년)이나 준우승한 ‘무적 함대’ 스페인. 아직은 유소년팀에 머물고 있지만 대부분이 레알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 등 스페인 최고 명문 클럽에 몸담고 있는 미완의 대기들이다.
위축될 법도 한데 북한의 축구 꿈나무들은 당찼다. 3골을 먹었어도 결코 고개를 숙이지 않았다. 경기장을 찾은 팬들이 박수를 보낸 건 단순한 동포애 뿐만이 아닌 그들의 패기와 당당함 때문이었다.
북한 청소년대표팀이 국제축구연맹(FIFA) 청소년월드컵 8강 문턱에서 좌절했다. 북한은 29일 울산종합운동장에서 열린 대회 16강전 스페인과의 경기에서 0-3으로 무릎을 꿇었다. 지난 2005년 페루 대회에 이어 2연속 8강 진출을 노린 북한은 남측 동포들의 일방적인 응원을 받으며 우승후보 스페인에 도전했지만 세계 축구와의 현격한 수준차를 절감한 채 짐을 싸야 했다.
북한의 힘과 스페인의 기술이 맞붙은 경기였다. 선 굵은 축구를 구사한 북한은 빠른 침투로 문전을 위협했지만 스페인의 짜임새 있는 조직력에 90분 내내 맞서기는 버거웠다. 스페인은 ‘제 2의 라울’이라는 찬사를 받고 있는 보얀 크르키치(바르셀로나)가 혼자 2골을 뽑아내는 원맨쇼를 펼치며 한 수 위의 실력을 뽐냈다.
개인 기술에서 현격한 기량차를 보였지만 북한에는 패기라는 무기가 있었다. 과감한 중거리슛을 퍼부으며 적어도 기싸움에서는 밀리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전반 중반에 교체 투입된 리명준은 3번의 중장거리포를 날리며 스페인 문전을 적극적으로 공략했다. 하지만 만회골은 터지지 않았고 후반 19분 이아고가 쐐기골을 북한 골대에 꽂아넣으며 승부를 마무리했다.
16강전을 마지막으로 한국 땅을 떠나게 된 북한 안예근 감독은 “한국에 머물면서 남측 인민들이 많이 응원해주셔서 고맙다는 인사를 전하고 싶다”면서 “앞으로 통일이 되면 더 좋은 상황이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프랑스는 16강전에서 연장 접전 끝에 튀니지를 3-1로 꺾고 8강에 올라 스페인과 격돌하게 됐다. 또 가나는 브라질을 1-0으로, 페루는 승부차기 끝에 타지키스탄을 각각 누르고 8강에 합류했다.
울산=김기범 기자 kik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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