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그대로 ‘전쟁’이었다. 스크린 안에서는 선한 이무기와 부라퀴, 시민군과 계엄군이 맞붙었고 스크린 밖에서는 일반관객과 비평가들이 일전을 벌였다. 전쟁은 요란했다. 요란스러운 만큼 전과도 엄청났다.
2007년 여름, 대한민국을 더욱 뜨겁게 달구었던 <디 워> 와 <화려한 휴가> . 종영이 얼마 남지 않은 이 두 편의 영화가 남긴 것을 두 번에 걸쳐 정리한다. 화려한> 디>
7년 만에 <용가리> 의 실패를 딛고 일어선 것은 심형래만이 아니었다. 한국의 전설(이무기)과 역사(5ㆍ18 광주민주화운동)는 할리우드 공세에 밀려 위태위태하던 한국영화를 비상(飛翔)시켰다. 용가리>
28일 현재 두 영화의 관객은 각 800만명과 700만명. 많이 줄긴 했지만 아직도 박스오피스 1,2위 자리를 지키고 있으니 둘 합쳐 1,700만명까지는 가능할 것이다.
이 정도에 호들갑을 떨 정도로 한국영화의 힘이 약한 것은 아니다. 한국영화는 이미 두 번이나 일년에 두 편씩 1,000만 관객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폭발력이 달랐다.
지금 한국영화시장 상황이 그렇게 만들었다. 올해 들어 한국영화는 투자위축과 허술한 완성도, 스크린쿼터 축소로 산업적으로, 심리적으로 급격한 ‘위기’를 맞았다.
영화진흥위원회 통계에 의하면 지난해 60%이던 시장점유율이 올 상반기 41.7%까지 떨어졌다. <스파이더맨3> 를 신호탄으로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공세가 시작된 5월부터는 더욱 비참했다. 20%대로 급락하더니 급기야 7월에는 18.7%까지 내려앉았다. ‘10년 전의 악몽’ 이 다시 찾아오는 듯했다. 스파이더맨3>
그 우려를 <디 워> 와 <화려한 휴가> 가 일단 날려주었다. 무려 79.34%. 8월 26일 현재 한국 영화 점유율이다. 7월 326만명에 불과하던 한국영화 관객이 1,560만명으로 5배 가까이 급증했고, 그 대부분이 이 두 영화에서 나왔다. 화려한> 디>
반면 7월 1,417만명이던 할리우드 영화는 406만명으로 급감했다. 지난해 <괴물> 이 8월에 한국영화 점유율을 80.9%까지 끌어올린 것과 비슷하다. 덕분에 올해 한국영화 평균점유율도 26일 현재 48.2%까지 올랐다. 괴물>
국내 전체 영화시장 규모를 키운 데도 적잖은 기여를 했다. 올 상반기만 하더라도 전체영화관객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흥행몰이에도 불구하고 작년보다 10.8%나 줄어든 7,200만명이었다.
그러던 것이 불과 두 달 사이에 1억676만명으로 늘어나 작년 같은 기간의 9,812만명을 앞질렀다. 여기에 <디 워> 는 흥행성공 여부를 떠나 미국에서 와이드릴리즈(1,500개 스크린)로 개봉하는 첫 한국영화란 기록까지 남기게 됐다. 디>
이 두 영화가 거둔 무엇보다 소중한 성과는 한국영화에 대한 관심의 회복이지만 그렇다고 이것이 곧장 흥행과 투자활성화를 불러온다는 의미는 아니다. 멀티플렉스 메가박스를 매각하면서 영화투자와 제작에도 이미 손을 뗀 <디워> 의 투자사 쇼박스나 적자를 안고 있는 <화려한 휴가> 의 CJ엔터테인먼트가 이번 이익을 영화에 재투자할지조차 미지수다. 화려한> 디워>
영화평론가 오동진씨는 “이보다는 오히려 보다 큰 구도, 즉 한국영화 지형변화에 기여할 것”이라며 최근 SKT가 영화배급업 진출을 선언한 것을 예로 들기도 했다.
보다 심각한 문제는 이 두 영화의 폭발이 한국영화산업의 근본적인 문제해결에는 아무 도움이 되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1,500만명이 몰렸지만 전체 한국영화 수익구조는 양극화, 적자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스크린 독과점만 심각해 ‘제작과 상영의 다양성에 의한 한국영화산업의 안정적 발전’만 더욱 요원해 보인다는 것.
그래서 영화계는 이 두 영화가 만들어놓은 한국영화에 대한 관심이 때마침 뒤이어 쏟아지는 <즐거운 인생> <사랑> <권순분여사 납치사건> <마이 파더> 같은 추석연휴용 중급 영화들에 이어지길 간절히 바라고 있다. 마이> 권순분여사> 사랑> 즐거운>
이대현 기자 leedh@hk.co.kr
■ '디워''화려한 휴가'의 그림자
<디 워> 가 최고 관객을 끌어들인 8월 첫째 주, 이 영화는 전국 690개 스크린에 걸렸다. 같은 주 <화려한 휴가> 도 500개가 넘는 스크린을 확보, 두 영화가 전체 스크린(1,800여개)의 3분의 2를 점유하는 ‘싹쓸이’ 현상을 빚었다. 화려한> 디>
때문에 이 시기 예정됐던 영화들이 줄줄이 개봉을 늦추고, 개봉을 강행했던 영화들은 높은 객석 점유율에도 불구하고 스크린을 늘리지 못해 발을 굴러야 했다.
■ 거대 자본에 접수된 영화시장
스크린 독과점 문제는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지난해 <괴물> 이 700개가 넘는 스크린을 차지하며 1,300만 관객의 신화를 일굴 때부터 논쟁은 불붙기 시작했다. 괴물>
올 상반기 <스파이더맨3> 로 시작된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릴레이 공습은 <캐러비안의 해적: 세상의 끝에서> 가 무려 912개 스크린을 잡아먹으며 독과점 논란의 절정을 이뤘다. 그 바통을 <디 워> 와 <화려한 휴가> 가 이어 받았다. 화려한> 디> 캐러비안의> 스파이더맨3>
영화시장에 쏠림 현상이 일어나는 것은 멀티플렉스(복합상영관)와 와이드릴리스(초기에 많은 스크린을 확보해 단기간에 투자금을 회수하는 배급방식)의 보편화, 그리고 그것을 가능케 만든 대형 배급사의 존재 때문이다.
<디 워> 와 <화려한 휴가> 는 지난해 기록적 적자를 기록한 메이저 배급사와 관객 감소에 허덕이던 극장업계의 필요가 맞아 떨어진,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를 벤치마킹한 ‘기획 상품’이다. 화려한> 디>
미국은 3만 개가 넘는 스크린수 덕분에 아무리 큰 영화라도 전체의 20%를 채우기 힘들다. 하지만 1,800여개에 불과한 한국 시장은 할리우드 직배사나 대기업 계열 국내 배급사의 자본력으로 충분히 ‘유린’할 수 있는 규모다.
두 영화는 마케팅에만 웬만한 영화의 총제작비를 넘는 돈을 쏟아 부었고, 계열 멀티플렉스를 총동원해 관객들이 다른 영화를 선택할 기회를 아예 박탈해 버렸다.
■ 더 작아지는 '작은 영화들
자본에 의해 기획된 영화들이 스크린을 독과점함에 따라, 비교적 작은 규모의 영화들이 설 땅은 점점 더 줄어들고 있다. 8일과 9일로 예정됐던 <사랑방 선수와 어머니> 와 <두사람이다> 는 개봉을 2주나 늦춰야 했다. 일찌감치 시사회를 해놓고 개봉을 두 달 넘게 미룬 영화도 있다. 두사람이다> 사랑방>
<리턴> 의 이규만 감독은 “영화가 60% 넘는 객석 점유율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개봉 6일 만에 교차상영에 들어가야 했다”며 “이런 현실에서는 문화적 다양성을 위한 스크린쿼터의 존재도 무의미하다”고 소수 영화의 스크린 독과점을 비판했다. 리턴>
<리턴> 의 순제작비는 31억원, 250개 스크린에서 3주를 상영해야 손익분기점을 넘길 수 있지만, <디 워> 와 <화려한 휴가> 의 기세에 밀려 개봉 3주차에 상영관이 30개로 줄어들었다. 화려한> 디> 리턴>
유상호 기자 shy@hk.co.kr
■ '디워''화려한 휴가' 뜨거운 마케팅 전략
폭발적 흥행과 뜨거운 논란을 낳은 <디 워> 와 <화려한 휴가> 는 어떤 방식으로 관객에게 접근했을까. 화려한> 디>
<디 워> 는 철저한‘숨기 전략’을 채택했다. 디>
개봉 전부터 심형래 감독에 대한 인터뷰 요청이 빗발쳤지만, 심 감독은 배급사에 의해 철저히 가려져 있었다.
다만 후배 개그맨들이 진행하는 TV 쇼프로그램에 출연, 기존 영화계로부터 배척당하는 고독한 이미지와 할리우드를 넘어 서려는 의지를 부각했다. 결과는 대성공. 심 감독은 허술한 완성도에서 비롯된 평론가와 언론의 공격을 막아주는 든든한 네티즌 부대를 얻게 됐다. 그러나 이런 전략이 미국에서도 먹힐지는 두고 볼 일이다.
<화려한 휴가> 는 정공법을 택했다.‘ 80년 광주에 대한 첫번째 정면응시’를 표방하며‘5월 그날’에 대한 사람들의 부채의식을 자극했다. 화려한>
그리고 감독과 배우를 총동원한 인터뷰 공세를 통해“영화를 보는 내내 울었다”며 신파적 코드를 강조했다. 이 시도도 일단은 성공. 하지만 거북할 정도로‘들이 대는’ 마케팅에 비해 영화의 흥행속도는 더뎠다.
입체감 없는 캐릭터, 코믹 멜로드라마의 배경으로 전락한‘5월 광주’의 탈색된 풍경은 그날을 현실로 기억하는 이들에게 박제로 비쳐졌기 때문이다.
유상호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