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2월쯤 김 선생(김용문씨)이 한국 현대시 100년을 맞아 시 100편을 도자기에 담고 싶다기에 선뜻 작품을 골라줬죠. 경기 오산에 있는 작업장에도 가봤는데 가마 속에서 시가 도자로 재탄생하는 장면이 참 장관입디다.”
신경림(71) 시인의 애송시들이 도예가 김용문(52)씨가 빚은 도자기에 아로새겨졌다. 이렇게 탄생한 시도자 100점을 선보이는 전시회 <시는 시도자로 다시 태어난다> 가 9월 5~11일 서울 인사동 이화갤러리, 12~18일 인사동 31갤러리에서 열린다. 신씨가 고른 시들은 전시회 이후 2권의 시 선집으로 제작된다. 시는>
도자기 100점의 형태는 각양각색이다. 장승 등의 모양을 본뜬 토우가 절반 정도이고 항아리, 막사발, 접시 형태도 있다. 여기엔 김소월, 한용운, 백석에서부터 안도현, 문태준, 김선우까지 시대를 대표할 시인들의 작품이 총망라됐다. 신씨는 “문학사적으로 의미 깊은 시를 고심해 골랐다기보다는 내가 즐겨 읽으면서도 도자기에 조형하기 쉬운 작품을 선별했다”고 말했다.
김씨는 도자기에 유약을 이용해 색을 입히고, 조각칼로 시에서 발췌한 구절을 새겼다. 지름이 최고 1m에 이르는 접시 모양 도자엔 지두문(指頭紋)이라 일컫는, 손가락 끝으로 그린 그림이 있어 흥미롭다.
신씨의 시 <갈대> 엔 비췻빛 유약 위에 갈잎이 흔들리고, 나희덕 시인의 <저 숲에 누가 있다> 엔 호기심과 두려움의 은유인 듯 창문이 그려져 있다. 이에 대해 김씨는 “표면에 바른 유약이 굳을 때까지의 5초 동안 시에서 받은 감흥을 빠르게 그리는 작업으로, 옹기장이가 문양을 넣는 전통적 방법”이라고 설명했다. 저> 갈대>
5월 오산에서 열린 ‘세계 막사발 장작가마축제’에서 조직위원장을 맡기도 한 김씨는 2000년부터 시도자 창작에 관심을 갖고 여러 차례 전시회를 열어왔다. 신씨는 “2003년 말 인사동 막걸리집에서 동석했던 김씨가 불쑥 도자기에 내 시를 새기고 싶다고 하기에 ‘그것 참 좋은 생각이다’라고 대꾸했다”며 두 사람 인연의 실마리를 밝혔다.
김씨는 “이번 전시를 위해 6개월간 집중적으로 작업하면서 바닷속에서 도자기 조각이 건져 올려지는 장면을 자주 떠올렸다”며 “내게 시도자 작업은 미래 세대에게 보여줄 타임캡슐을 묻는 일 같다”고 말했다.
“나는 시만 골랐을 뿐 이번 작업은 시구 발췌부터 도자 제작까지 온전히 김씨의 수고”라고 겸손해 한 신씨는 “20, 30년 전보다 시집 판매량이 10분의 1로 줄었다는데 이번 전시회가 시가 대중에게 한발 더 다가서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훈성기자 hs0213@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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