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와 아들이 이틀 연속 지휘봉을 잡는다. 강남심포니 상임지휘자 서현석(66)씨는 30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강남심포니를 지휘해 브람스 교향곡 4번을 연주하고, 이튿날에는 아들 서진(32)씨가 대구시민회관에서 열리는 대구시향의 브런치 콘서트 지휘대에 선다. 서진씨는 독일에 거점을 둔 크로스 체임버 오케스트라의 상임지휘자로 활동 중인 신예 지휘자다.
세계적으로는 예리히-카를로스 클라이버, 아르비드-마리스 얀손스, 네메-파보 예르비 등 대를 이은 명 지휘자들이 많지만, 국내에서는 이런 예를 찾아보기 힘들다. 바이올린을 전공하는 정명훈씨의 아들이 지휘로 전공을 바꿀 것을 고려한다는 소식이 화제가 됐을 정도다.
잘츠부르크 모차르테움과 쾰른 음대 등에서 첼로를 공부한 서진씨는 2003년 지휘로 전공을 바꿔 로테르담 음대에 진학했다. 유럽에서 주로 활동하면서 2005년 경북도립오케스트라 공연을 통해 처음 국내 무대에 섰고, 아시아의 유망한 젊은 지휘자 5명에 포함돼 정명훈씨가 이끄는 지휘 워크숍에 참여하기도 했다.
“원래 꿈이 좋은 음악가가 되는 것이었어요. 좀 더 폭 넓은 음악을 하고 싶었고, 어릴 때부터 봐왔던 아버지의 모습도 많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연주 도중 나도 모르게 아버지의 모습이 나와 깜짝 놀라기도 해요.”
아들이 이야기하는 모습을 흐뭇한 표정으로 바라보던 서현석씨는 “KBS교향악단에서 트럼펫 수석을 하다 뒤늦게 지휘 공부를 한 나보다 아들이 훨씬 나을 것”이라며 웃음을 지었다.
“아들이 처음 지휘를 하겠다고 했을 때는 걱정스러운 마음이 더 컸어요. 그런데 지난해 독일 공연에서 아들의 열정을 확인했고, ‘지휘자로서의 길을 걸어갈 수 있겠다’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공연을 위해 이달 초 귀국한 서진씨는 틈만 나면 아버지의 리허설을 참관한다. 같은 지휘자의 입장에서 아버지의 해석에 대해 반대 의견을 내기도 한다. 서현석씨는 “아들에게 배우는 부분도 많다. 특히 현악기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해준다”고 말했다. 부자는 평소에도 거의 매일 국제 전화로 음악 이야기를 나눈다.
서진씨는 “지휘를 한 뒤로 아버지와의 대화가 두 배는 늘었다”면서 “궁금증이 생길 때마다 전화기를 드는데, 앞으로 질문이 점점 많아질 것 같다”고 했다.
강남심포니는 지난해 국내 교향악단 사상 최초로 베토벤 교향곡 전곡을 녹음해 화제를 모았던 오케스트라. 올해는 브람스 교향곡 전곡 녹음에 도전하고 있다.
서진씨는 “아들이라서 하는 말이 아니라 객관적으로 봐도 대단하다. 안정된 음정과 목금관의 색깔 등 아버지만의 강점을 배우고 싶다”고 말했다. “아버지의 뒤를 따라가다 보니 여러모로 도움을 많이 받아요. 하지만 제대로 못하면 아버지께도 폐가 된다는 생각에 어깨가 무겁습니다.”
서현석씨는 언젠가 아들과 한 무대에서 번갈아 지휘봉을 잡을 날을 기다리고 있다. “지휘자 주빈 메타와 아버지 메리 메타가 함께 공연을 했는데 아버지는 서곡과 협주곡을, 아들은 교향곡을 지휘했어요. 욕심이 나는 장면입니다. 주위 사람들이 지금도 가능하지 않냐고 하는데 외부에서 확실히 인정을 받아올 때까지는 안돼요.”
그는 “아들이 하반기에 폴란드와 크로아티아에서 열리는 국제 지휘 콩쿠르 본선에 올라 있는데 그 결과를 보고 생각해보겠다”며 웃었다.
김지원기자 eddi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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