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인간의 어리석음과 불운의 기록이다. <로마제국 쇠망사> 를 쓴 영국인 에드워드 기번이 남긴 말이라고 한다. 이런 역사관에 대한 후세의 평가는 엇갈린다. 로마제국>
로마 황제를 비롯한 인간의 본성을 탐구해 셰익스피어 작품처럼 탁월하게 역사를 조명했다는 찬사와, 로마제국 멸망을 역사의 진보 아닌 퇴보로 보는 독단이 두드러진다는 비판이 공존한다.
기번에 관한 글을 읽으며 엉뚱하게 박근혜 생각을 했다. '아름다운 패배'라는 칭송과 공치사를 뒤로 하고 칩거하면서 "스스로 용서가 안 된다"고 했다는 주변의 전언이 떠올랐다.
알듯 모를 듯 하지만 불운을 탓하기보다 어리석음을 자책한 말로 들었다. 그게 그에게 어울리는, 자신에게 엄격한 원칙주의자다운 반성이라고 믿고 싶다.
● '애국애족' 실천할 비전 흐릿해
그는 어제 저녁 후보 캠프 해단식에서도 자책과 반성을 앞세웠을 것이다. 그 전에 이 글을 쓰고 있기에 짐작할 뿐이지만, 당심(黨心)과 민심을 함께 얻지 못한 부덕함에 용서를 구하지 않았을까 싶다. 또 지극한 불운에 눈물 쏟은 지지자들을 미소로 다독거려 다시 감동을 주었을 듯 하다. 훗날을 기약하며 굳센 의지를 내보이는 것은 그답지 않다.
그러나 그가 진정 뭘 반성했을지 궁금하다. 당심 얻기에 몰두한 나머지 민심을 더 열심히 좇지 못한 것을 못내 아쉬워했을까. '애국애족'을 되뇌는 충정과 성심만으로 민심을 감동시킬 수 없음을 깨닫지 못한 것을 후회했을까. 아니면 그저 힘이 닿지 못한 것을 참담하게 여겼을까.
나는 그가 '애국애족'을 실천할 뚜렷한 비전을 제시하지 못한 것이 실패의 근본이라고 본다. 박근혜가 왜 대통령이 되어야 하는지, 나라와 국민을 위해 어떻게 남달리 이바지 할 수 있는지 막연했다. 역사적 맥락에서 자임할만한 유일한 역할을 스스로 뒷전으로 밀어둔 채, 도덕성과 국가경영 능력과 본선 경쟁력 등을 치열하게 다툰 것은 잘못이다.
박근혜의 역사적 역할이 도대체 뭐냐고 반문하는 이가 많을 것이다. 나는 그게 노무현 김대중 김영삼 노태우 전두환을 모두 넘어 박정희 대통령에 가 닿는 해원(解寃)과 화해와 타협의 과업이라고 보았다.
박정희 시대가 끝난 지 30년이 가깝도록 국민 의식과 행동과 삶과 정치를 숙명처럼 얽어 매고 있는 고루하고 편협한 적대와 반목을 청산하는 절실한 과제다. 그러나 그는 대선 경쟁에 나서면서 오히려 과거보다 이념적으로 보수화한 면모를 보였다.
그게 우선 경선을 이기는 전략으로 여겼을 수 있고, 예상보다 큰 성공을 거둔 토대라는 평가도 있다. 하지만 그 것으로 역사와 사회를 포용하는 역할 또는 사명과는 결별한 것으로 비친다. 민심을 널리 얻지 못한 한계를 스스로 구축한 셈이다.
박정희를 혐오하는 이들은 이런 평가조차 망발이라고 할 것이다. 그를 기리는 이들도 대개 부질없는 낭만으로 여길 것이다. 그러나 1980년 이래 피와 눈물, 억압과 봉기, 가학과 보복이 교차하는 격동을 겪고서도 진정한 화해와 타협을 이룰 역량도 의지도 없는 사회가 '역사의 퇴보'를 떠드는 것은 위선이다. 민주화 공적을 내세워 틈만 나면 민주주의 이상을 배반하면서도 모든 원죄를 박정희에게 묻는 미망(迷妄)의 증거일 뿐이다.
● 이념ㆍ계층 포용하는 리더십 절실
DJ가 그나마 오랜 과도기를 청산할 수 있을까 기대했다. 그러나 그도 우리 내부 갈등과 적대를 완화하지 못했다. 오히려 억눌린 한을 치유한다는 명분에 집착, 갈등과 적대를 다음 세대에까지 유산으로 남겼다. 노무현 정권이 역사 속으로 역주행하는 길을 열어준 셈이다.
이처럼 지루한 혼돈을 헤어나지 못한 사회가 저마다 '경제 살리기'와 '남북 평화'가 국가 과제라고 외치는 것은 이상하다. 그제 아침 어느 학자는 이메일로 보내온 글에서 "박시제중(博施濟衆), 널리 백성에게 베푸는 정치가가 그립기만 하다"고 썼다. 누구보다 박근혜 대표가 귀 기울이기 바란다.
강병태 논설위원 btk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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