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이 흐르면 세상은 바뀌고, 새로운 세상은 새로운 인물을 원한다. 속절없이 흘러가는 세월이 야속하지만 어느 누구도 영원히 정상을 지킬 수 없다. 일본 오사카에서 열리고 있는 2007세계육상선수권대회에 참가하고 있는 세 명의 여자육상 스타들이 필드에서 흘리고 있는 구슬땀이 인생의 복사판처럼 저마다 다른 의미로 다가오고 있다.
‘미녀새’ 옐레나 이신바예바(25·러시아). 더 이상 오를 곳이 없는 여자장대높이뛰기의 절대강자. 경쟁자는 없다. 오로지 자신만이 라이벌이다. 2005년 헬싱키 세계육상선수권에서 마의 5m를 벽을 넘어 세계 신기록(5m01)을 세운 이신바예바는 지금까지 세계신기록을 무려 20회나 경신하며 승승장구했다.
하지만 5m01 기록을 세운 뒤 2년 동안 제자리를 걷고 있다. 그러나 지난 26일 예선에서 가뿐히 4m55를 넘으며 12명이 겨루는 결선에 진출하며 또다시 자신과의 싸움에 나선다. 이신바예바는 “기술적 변화가 마무리된 만큼 대회 2연패를 자신한다. 문제는 내가 계속 진화할 수 있느냐"라며 21번째 세계신기록 경신의 의지를 보이고 있다. 결승은 28일 오후 7시30분에 열린다.
이신바예바가 ‘지지 않는 태양’이라면 ‘중장거리의 샛별’ 티루네시 디바바(22·에티오피아)는 ‘신예’라는 수식어를 거부한 채 이번 대회를 통해 세계육상계의 ‘거성’으로 거듭나겠다는 각오다.
디바바는 2005년 헬싱키 세계선수권에서 5,000m와 1만m 두 종목을 최초로 동시에 석권하며 자신의 이름을 널리 알렸다. 디바바는 지난 26일 여자 1만m 결승에서 동료와의 충돌 사고에도 불구하고 금메달을 차지하는 저력을 발휘했다. 레이스 중간 지점에서 라이벌인 메스타웨트 투파와 충돌해 복부에 충격을 받은 디바바는 선두와의 간격이 30m 이상 벌어졌다. 하지만 디바바는 마지막 한 바퀴를 남겨두고 엘반 아베이레게세(터키)를 제치고 31분55초41로 결승선을 통과했다. 새 시대가 원하는 새 얼굴다운 기량을 보여준 것이다. 디바바는 다음달 1일 5,000m 결승에서 숙명의 라이벌 메세렛 드파(에티오피아)와 대회 2회 연속 2관왕을 놓고 한판 승부를 벌일 예정이다.
권불십년이라고 했던가. 이신바예바와 디바바에게 무대를 내주고 이제 쓸쓸히 퇴장을 준비하는 선수도 있다. ‘살아있는 전설’ 멀린 오티(47·슬로베니아)는 1980년 모스크바 올림픽에서 첫 선을 보인 이후 세계선수권대회에서 금메달 3개, 은메달 4개, 동메달 7개를 따는 등 7차례 올림픽을 포함해 메이저 대회에서 총 35개의 메달을 차지한 단거리 스타. 하지만 더 이상 세월의 무게를 이길 수는 없었다.
2002년에 국적을 자메이카에서 슬로베니아로 바꿔 2004아테네올림픽에 참가했던 오티는 최근 면역체계 이상으로 훈련도 제대로 못했지만 이번 대회에 출전을 강행하는 등 여전히 식지 않은 열정을 보였다. 그러나 예상대로 결과는 참담했다. 지난 26일 100m 예선에서 11초64로 4위를 차지하면서 2라운드 진출에 실패했다.
하지만 오티는 세월을 거스를 생각이 없다. 비록 2라운드 진출 실패와 함께 대회를 마감했지만 오티는 “메달을 위해서가 아니라 도전이 나의 목표고 다음은 베이징이다”라며 1980년 모스크바올림픽 때부터 이어온 8회 연속 올림픽 진출에 대한 의욕을 불태우고 있다.
김두용 기자 enjoysp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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