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 경선 패배 후 서울 삼성동 자택에서 칩거해온 박근혜 전 대표가 27일 외부에 모습을 드러냈다. 일주일만의 외출이다. 박 전 대표는 이날 서울 부림동 한 중식당에서 경선 선대위 관계자들과 당협위원장 및 지지자 등 1,5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선대위 해단식을 겸한 만찬 회동을 갖고 소회를 밝혔다.
박 전 대표는 이 자리에서“저 같이 큰 신세를 지고 살아가는 사람도 드문 것 같다. 여러분 별로 안녕하시지 않으셨던 것 같다. 여러분 기대에 부응하지 못해서 죄송하다”며 “그동안 아무 조건이나 요구도 없이 저를 도와서 헌신하시면서 최선을 다해주신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고 인사를 했다.
그는 “여러분의 그 마음을 생각하면 아프기 그지 없다”며 “저를 신뢰하고 선택 해 주신 데 대해 꼭 보답해 드리고 싶었으나 그렇게 되지 못한데 대해 오직 죄스러울 뿐”이라고 말했다.
박 전 대표는 이어 “앞으로도 저는 바른 정치를 할 것이고 여러분과 힘을 합해서 좋은 나라를 만들어 가는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나 향후 대선에서의 역할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흰색 자킷 차림의 박 전 대표는 비교적 차분한 표정과 어투였다.
선거 패배에 대한 억울함과 이명박 후보측에 대한 비판도 강하게 나왔다. 서청원 고문은 ‘박 전 대표측 반성’ 발언을 한 이재오 최고위원을 강한 톤으로 비난, 향후 갈등을 예고했다.
안병훈 공동선대위원장은 “당원이나 대의원 국민선거인단이 행한 투표에서는 이기고 여론조사에서 패하는 이 어처구니 없는 현실을 놓고 분하고 원통해서 밤잠을 못 자면서 일주일을 보내고 이 자리에서 왔다”며 “이번에 뜻을 이루지 못했지만 박 전 대표가 이루려던 그 뜻을 우리는 계속 이어가야 한다”고 강조하며 감정이 복받친 듯 다소 울먹였다. 홍사덕 선대위원장은 “박근혜라는 이름을 가슴에 간직하고 공유하자. 꿈은 이루어질 것이다”고 말했다.
서 고문은 “박근혜측 사람들이 반성을 해야 한다고 하는데 무슨 반성을 해야 하나. 선거인단에서 승리한 것을 반성해야 하나”며 “저쪽은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했어도 선거인단에서 졌다. 왜 당원들이 등을 돌렸는지에 대해 그들이야말로 그것을 반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누구보고 건방지게 반성하라는 거냐. 안하무인격이고 기고만장한 사람은 절대 승리자가 될 수 없다”며 “이래서 집권할 수 있겠나. 승리는 인정해 주지만 도덕성까지 인정할 이유는 없다”고 비판했다.
이날 해단식은 규모가 컸다. 행사 시작 전인 오후 4시께부터 이미 1,200석 좌석은 꽉 찼고, 자리를 잡지 못한 인사들은 선 채로 행사에 참석하기도 했다. 오후 5시께 박 전 대표가 행사장에 입장하자 참석자들은 ‘박근혜’를 연호하며 큰 환호와 박수를 보냈다.
당초 패자의 해단식인 만큼 다소 우울하고 숙연한 분위기가 될 것으로 예상됐으나 “마치 당선 사례 행사 같다”는 농담이 나올 정도로 분위기는 좋았다. 메뉴를 라조기와 자장면으로 통일하고 비용을 참석자들이 1만원씩 갹출했다는 점도 이색적이었다.
정녹용 기자 ltree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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