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 아라비아(이하 사우디) 정부의 중재를 통한 한국정부와 탈레반 측의 인질석방 합의설이 제기되면서 사우디 정부의 역할이 새삼 주목되고 있다.
아프가니스탄 현지 통신사인 아프간이슬라믹프레스(AIP)가 보도한 사우디 중재를 통한 인질석방 합의설에 대해 탈레반 현지 사령관은 이를 부인하고 나섰지만 여러 정황상 사우디 정부의 중재역할은 설득력을 얻고 있다.
무엇보다 이 같은 보도가 노무현 대통령을 친서를 가진 송민순 외교통상부 장관의 사우디 방문과 때를 같이 해 나온 것이 예사롭지 않다. 외교부는 이와 관련, 25일 보도자료를 통해 “송 장관은 대통령 친서를 전달하면서 이슬람 주도국인 사우디가 한국인 피랍사태 해결을 위해 보여준 노력에 사의를 표하고 지속적인 협력을 요청했다”고 밝혔다.
압둘라 사우디 국왕도 송 장관에게 “탈레반의 행위는 이슬람의 평화, 우의, 자비정신에 배치되며 아프간 대통령 및 이슬람 지도자들과 협력, 문제해결을 위한 제반 조치를 계속 취해 나가겠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이나 사우디 정부 양측의 언급만 보더라도 인질석방협상 막후에서 사우디 측이 상당한 역할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더욱이 사우디는 아랍에미리트, 파키스탄과 함께 과거 탈레반 정부를 인정한 세 나라 중 한 곳으로 지금도 여전히 탈레반에 직ㆍ간접적 영향력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사우디와 탈레반 모두 수니파가 주종을 이루고 있는 종교적 전통과도 무관치 않다.
사우디 왕가는 이슬람 종교학교인 마드리사에 재정적 지원을 해 왔으며, 탈레반도 마드리사가 그 모태가 됐다. 따라서 사우디는 우방인 한국정부의 입장과 현실적 한계를 탈레반 측에 전달하고 합리적 절충을 모색하도록 막후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정부 관계자는 “사우디 정부가 이번 사태해결에 중요한 기여를 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탈레반 현지 사령관이 사우디의 개입을 부인한 것은 사우디 측 중재를 탈레반 지도부만 알고 있거나 탈레반 지도부와 현지 세력간 이견이 존재할 가능성을 시사한다는 분석이다.
정진황 기자 jhch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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