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한번 롤러코스터를 탄 주말이었다. 탈레반 피랍자 가족들은 ‘인질 전원 석방 합의’라는 외신 보도로 한껏 부풀었지만 곧바로 ‘합의 사항이 없다’는 정부 발표로 애간장을 태웠다. 하지만, 한국 정부와 탈레반간 협상이 상당히 깊은 단계에 접어든 것으로 알려져 인질 전원 석방에 대한 기대감이 점차 커지고 있다.
■ “협상 타결” VS “공식 합의사항 없어”
피랍 사태 38일째인 25일 오후 6시께(한국시간) 현지 통신사인 아프간이슬라믹프레스(AIP)가 ‘탈레반과 한국정부가 인질 19명의 석방에 합의했다’고 긴급 타전했다. 지지부진하던 협상 국면을 깨는, 피랍 사태 이후 최고의 낭보였다. AIP는 ‘믿을 만한 소식통’을 인용하며 “사우디아라비아의 중재로 협상이 타결돼 한국 정부와 탈레반, 사우디 정부가 일요일 가즈니주에서 협상 결과를 공식 발표할 것”이라며 구체적인 정황도 제시했다.
때마침 이날 송민순 외교부 장관이 사우디를 방문, 압둘라 국왕 예방을 앞둔 상황이어서 ‘사우디 중재론’이 설득력있게 받아들여졌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 성남시 분당 가족모임 사무실에 모인 피랍자 가족들도 “그동안 외신들의 오보가 많았지만 이번 만은 믿고 싶다”고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하지만 한 시간쯤 뒤 정부가 “접촉은 있지만 공식 합의된 내용은 없다”고 밝힌 데 이어 탈레반측도 합의 사실을 부인하면서 기대감은 또 다시 실망감으로 급변했다. 탈레반 대변인인 카리 유수프 아마디는 AF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현재 전화로 한국 측과 접촉 중이지만, 아직까지 새로운 합의가 도출되지 않고 있으며 협상만 진행 중이다”며 합의 사실을 부인했다.
■ 협상 타결 임박 분위기
당사자의 부인으로 기대감은 한풀 꺾이긴 했지만 AIP의 보도가 단순한 오보만은 아니라는 징후는 곳곳에서 감지됐다. 한국인 인질 납치를 주도한 압둘라 잔 가즈니주 탈레반 사령관이 교도(共同)통신과의 인터뷰에서 “탈레반 지도자위원회에서 곧 결정을 하고 발표할 것”이라고 밝힌 것. 양측간 협상이 상당 수준까지 도달돼 조만간 결과가 나올 수 있다는 얘기였다. 우리 정부쪽에서도 “결과가 수일 내에 나올 수 있다”는 얘기들이 흘러나왔다.
이에 따라 최종 합의 단계는 아니지만, 협상이 무르익어 타결이 임박했다는 희망섞인 전망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협상 타결의 최대 걸림돌이었던 ‘수감자ㆍ인질 맞교환’을 두고 나오는 신호도 긍정적이다.
AIP가 타결 조건으로 ‘한국군 조기 철군과 선교사 철수’를 언급했고 아사히 신문은 탈레반이 1인당 10만달러씩의 몸값을 요구했다고 보도했다.
다음달 13일 시작되는 이슬람 최대명절인 라마단을 앞두고 아프간 정부의‘수감자 특별사면설’도 나오고 있다. 이 때문에 아프간 정부가 반대하는 ‘인질 맞교환’ 대신, 공식적으로는 ‘조기철군과 선교사 철수’, 이면 합의로 ‘몸값 지불과 수감자 사면’으로 합의가 이뤄지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당장 타결은 아니지만 협상에 상당한 진전이 있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인질 가족들도 다시 기대감 속에 촉각을 곧두세웠다. 휴일인 26일에도 20명 가까이 가족 모임 사무실에 나와 자리를 지켰다. 한 가족모임 관계자는 “가족들이 잇단 오보소동을 겪어 반신반의 하면서도 처음으로 제기된 ‘전원 석방설’에 기대를 걸고 후속 보도를 기다리고 있다"고 전했다.
송용창 기자 hermee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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