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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병현 전 대사의 한중수교 비망록] <23> 중국의 한국전 참전문제 뜨거운 감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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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병현 전 대사의 한중수교 비망록] <23> 중국의 한국전 참전문제 뜨거운 감자로

입력
2007.08.27 0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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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이 드디어 보따리를 다 풀어놓았다. 그 내용물을 보니 대만문제에 대한 우리의 보따리를 풀어주면 수교는 될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이제 교섭의 목표는 ‘수교’를 달성하느냐 못하느냐의 선을 넘어선 듯 했다. 나는 비로소 가장 큰 목표가 가시권에 들어온 데 일단 안도를 하였다.

바로 이 시점이 대만문제에 대한 우리 입장을 밝히기 전에 우리가 짚고 넘어가야 할, 그리고 얻어내야 할 문제를 꺼낼 때였다. 특히 우리 국민의 입장에서 한국의 수교대표단이 수교교섭에 임하면서 명백하고도 당당하게 밝히고 넘어가야 할 문제와 얻어내야 할 문제들을 내가 직접 기안하고 신정승 과장이 정리한 원고를 토대로 준비한 장거리 품목(shopping list)을 모두 꺼내놓았다.

먼저 중국사람은 세계에서 인내력이 가장 많은 사람들이니 참을성을 갖고 경청해 주기 바란다고 양해를 구했다.

첫째 문제는 중국의 한국전쟁 참전에 따른 한국국민의 고통과 피해를 지적하고 중국측 해명이 수교발표문이나 적절한 방법으로 표명되어야 한다는 점이었다.

당연히 한국전 참전문제 제기는 제 2차 예비회담 대책에 포함되어 있었다. 제2차 예비회담 대책에는 없었지만 이와 관련된 문제가 1961년 중국과 북한이 체결한 ‘중조(中朝)우호협력 및 상호원조에 관한 조약’ 으로 요약되는 소위 중조 ‘혈맹관계’ 부분이다.

한중수교에 대한 열망이 한국국민의 여론임에는 틀림없었지만 중국의 한국전 참전으로 수많은 우리국민이 목숨을 잃거나 부상을 당했고 막대한 물적 피해를 입은 역사적 아픔을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었다.

허나 내가 이상옥 장관으로부터 받고 간 가장 기본적인 훈령은 ‘조기수교 달성’이니 본말을 전도하지 않는 한도 내에서 이 뜨거운 감자를 식혀서 넘겨야 했다.

나는 먼저 지난해 11월 노태우 대통령이 첸치천(錢其琛) 외교부장을 접견한 자리에서 “중국이 북한과의 의리를 저버리지 않고 한중관계 개선을 할 수 있다”고 한 발언을 인용, 한중수교로 인해 중국과 북한의 관계가 멀어져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고 확실한 언질을 주었다.

다만 한중수교 후에는 한국을 겨냥한 중국과 북한의 군사적 혈맹관계는 청산함과 동시에 한중관계 수준을 조속한 시일 내 중국과 북한 수준으로 끌어올려달라는 요망을 전달했다. 지난 40여 년 동안 중국이 북한 일변도의 정책을 취해오는 바람에 한중 관계가 정체돼 있었음도 밝혔다.

특히 한국에 전쟁사태가 발생할 경우 중국군 개입 규정이 포함된 ‘중조우호협력 및 상호원조에 관한 조약’에 역점을 두어 언급했다. 이 조약으로 인해 한국은 중국과 북한 관계를 ‘혈맹’으로 본다고 강한 톤으로 지적했다.

중국의 한국전 참전문제는 가장 민감한 사안이었다. 그 뜨거운 감자를 넘겨줘야 할 시점이 우리가 대만문제를 밝히기 직전이라고 판단했다. 나는 “냉전체제 아래서 6ㆍ25전쟁에 참전함으로써 중국측에도 많은 희생이 있었겠지만 우리 국민이 큰 희생과 피해를 치른 사실을 아직도 전 국민이 기억하고 있다”고 담담한 어조로 말문을 열었다.

진정한 친구가 되기 위해서는 건드리고 싶지 않은 과거의 상처일지라도-과거에 사로잡히는 것이 아니라-미래를 위해 한 번은 조명하고 넘어가야 한다고 전제, 수교문서 또는 적정한 방법을 통해 짚고 넘어가는 것이 좋겠다고 제안했다.

내친김에 “양국 간 수교라는 역사적 전환점을 맞아 이런 불행한 일을 역사적 교훈으로 삼고 중국측이 한국국민을 이해시켜 준다는 뜻에서 이 문제를 한 번 해명해주기 바란다”고 요청했다. 아울러 한국전쟁과 같은 북한의 대남 무력도발을 방지하는 의미에서 공격용무기 공급을 금지해줄 것을 희망했다. 이때의 분위기를 일기장에 이렇게 적고 있다.

‘나의 판단으로 한중수교가 되리라는 전망이 서는 시점에서 이러한 까다로운 의제를 거론치 못한다면 우리 국민이 수교회담을 어떻게 평가할지, 왜 당당하게 주장하고 얘기하지 못했느냐고 평가할 것이라는 사실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특히 오랜 한중관계의 역사에서 우리의 주장과 목소리는 항상 약하고 중국은 때로는 과도한 요구와 주장을 해도 우리는 수용하고 우리의 주장을 접어두어야 했던 전철을 밟지 말자고 의식했기 때문이다.’

중국대표들은 물론 한국대표들도 바짝 긴장한 모습이 역력했다. 회담장은 진공상태 같은 압축된 긴장이 가득한 가운데 나의 낭랑한 목소리가 중국대표의 폐부를 찌르고 있었다. 이때처럼 긴장된 분위기는 나의 외교경험에도 없었다. 말하자면 중국이 한국의 문제제기를 받아들이지 않고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다면 우리 외교의 최우선 과제인 ‘한중수교’는 결렬되는 것이었다. 나는 이것을 걸고 도박을 하고 있었다.

한중문화청소년협회(미래숲)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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