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엔 바람이 있고 축제가 있다. 스코틀랜드의 수도 에든버러의 로열 마일. 에든버러 성에서 왕의 숙소인 홀리루드 하우스까지의 왕궁로 1마일은 계절에 관계없이 부는 북해의 세찬 바람과 고즈넉한 거리 풍경의 오묘한 조화로 관광객을 유혹하는 명소다.
그러나 로열 마일과의 만남이 8월에 이뤄진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이 거리는 17세기 고성의 추억이 아닌 살아있는 역사, 에든버러 프린지 페스티벌의 중심지로 옷을 갈아입는 까닭이다.
인구 45만명의 도시 에든버러는 매년 여름 축제가 열리는 8월이면 세계 각지에서 몰려온 250만명의 관광객으로 북적인다. 연중 영화, 책, 과학 등을 주제로 한 다양한 축제가 열리지만, 8개의 페스티벌이 집중돼 있는 8월이면 그야말로 축제의 도시가 된다. 그 중에서도 일등공신이 프린지 페스티벌이다. 이 행사를 위해 에든버러를 찾는 관광객만 150만명에 이른다.
5일에 시작, 27일 막을 내리는 올해 제61회 에든버러 프린지 페스티벌에는 총 1만 8,626명의 배우(performer)가 참여했다. 지난해 1,867개였던 참가 단체는 2,050개로 늘었으며, 모두 3만 1,000회의 공연이 250여 행사장에서 열렸다.
한국 공연단체의 참가도 지난해 6개에서 12개로 2배 늘었다. 1996년 기네스북에 세계에서 가장 큰 페스티벌로 기록되기도 한 에든버러 프린지 페스티벌은 이렇게 매년 행사의 규모가 커지고 있다.
이 축제의 공연장은 에든버러 도시 전체다. 행사 사무국이 극장(Theatre)이라는 용어 대신 행사장(Venue)이라는 말을 쓰는 것도 그래서다. 특히 로열 마일 중 하이 스트리트는 프린지 페스티벌의 공식 프로모션 장소다. 공연 홍보활동과 거리 퍼포먼스를 벌이는 독특한 의상의 젊은이들로 가득한 하이 스트리트는, 누구든 카메라 셔터에서 손을 떼지 못하게 만드는 곳이다.
공연을 하는 이도 보는 이도, 즐거운 미소가 만면에 가득한 이곳의 풍경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는 프린지 페스티벌의 정신을 그대로 보여주는 곳이다.
재즈 아카펠라 공연 홍보차 거리공연을 막 마친 옥스퍼드대 학생 나타샤 리튼(19)양은 “내게 음악은 취미생활일 뿐이지만 많은 이들과 음악을 공유하고 싶다“면서 “프린지 페스티벌은 참가 그 자체가 무척 즐거운 경험”이라고 말했다.
에든버러 프린지 페스티벌은 에든버러 주민들에게도 기쁨 그 자체다. 특히 이 행사가 가져오는 경제적 효과는 도시 모습을 바꿔놓았다. 마커스 로웰(35)씨는 “페스티벌 규모가 매년 커지면서 로열 마일의 경우 상점이 대폭 느는 등 많은 것이 달라졌다”고 말했다.
축제 사무국 조사에 따르면 에든버러 여름축제가 가져오는 경제적 효과는 1억 3,500만 파운드(한화 약 2,544억원), 그 중 프린지 페스티벌의 효과는 절반이 넘는 7,500만 파운드(1,413억원)다. 최근 영국 일간지 파이낸셜 타임스는 올해 프린지 페스티벌을 통해 1억 2,500만 파운드(2,356억원)의 경제적 효과가 있을 것으로 추정했다.
변방, 주변을 뜻하는 말인 프린지(fringe). 60년 전 에든버러와 만난 이 말은 이제 많은 이들에게 새로운 의미로 각인되고 있다. 전 세계 공연 마니아들을 흥분시키며, 축제의 폐막과 동시에 내년 축제를 기다리게 하는 힘이다. 2008년 에든버러 프린지 페스티벌은 8월 3~25일 열린다.
● 프린지 페스티벌
에든버러 프린지 페스티벌의 탄생은 194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차 세계대전의 상처를 보듬기 위한 에든버러 인터내셔널 페스티벌이 열렸을 때, 거기 초청받지 못한 8개 극단이 당시 축제장 주변(fringeㆍ프린지) 공터에서 자생적으로 공연을 하며 시작된 행사가 에든버러 프린지 페스티벌이다.
이후 '프린지 페스티벌'은 특정 기준에 따라 작품을 선정하지 않고 아마추어부터 전문 예술단체까지 자유롭게 참여하고 공동운영하는 공연 축제, 다양한 문화예술인들의 자유로운 상상력과 실험정신을 엿볼 수 있는 대안문화축제를 가리키는 이름이 됐다.
에든버러= 김소연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