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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여행산문집 '패스포트'낸 시인 김경주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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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여행산문집 '패스포트'낸 시인 김경주씨

입력
2007.08.25 0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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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갔다가 돌아오는 게 아닌, 낯선 곳에서 사라져 버리는 듯한 여행을 말하고 싶었습니다. 마치 유령처럼. 사라진 나그네의 생을 추적할 수 있는 유일한 문서는 여권이죠. 책 제목을 <패스포트> 라고 정한 것도 그런 이유입니다.”

2000년대 한국 시단에서 가장 주목받는 시인 김경주(31)씨가 여행산문집 <패스포트> (랜덤하우스코리아 발행)를 냈다. 그는 지난해 8~10월 고비사막, 12월부터 올 2월까지는 시베리아를 횡단했다.

거친 여로에서 돌아와 집중적으로 쓴 이 책은 통상적인 기행문 형식과 거리가 멀다. 시공간을 일러줄 푯말은 보이지 않고 풍경과 대면한 작가의 사유가 오롯하다. 산문에서 시로, 서간으로, 희곡으로, 형식은 다채롭게 변주된다.

고비사막 여행기에는 ‘유목’, 시베리아 여행기에는 ‘유형’이란 이름을 붙였다. 김씨는 이동식 천막 게르를 말 등에 얹은 유목민들이 삶을 떠도는 모래땅에서 “문득 말(語)의 먼지를 뿌옇게 일으키며 시작했던 사랑이 시라는 생각”(89쪽)을 하고, 정치범 유배와 소수민족 강제 이주가 자행됐던 동토에서 만난 히피들의 차가운 눈빛에서 “그들은… 러시아가 악보의 오선지 위에 아직 그리지 못하고 있는 굶주린 음표들”(291쪽)임을 간파한다.

여행길에 선 김씨는 경계에 선 자이자 자신의 발 밑을 지우며 점차 무화되는 존재다. 그는 다시 ‘유령’ 얘기를 꺼낸다. “원래 책 제목을 <배낭여행자의 인형극> 으로 붙이려 했다.

여행은 수많은 길 위에서 펼쳐지는 인형극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이 인형 속 유령처럼, 때론 유령이 들고 있는 인형처럼 보인다.” 삶이란 어쩌면 자기 안의 유령들이 만들어가는 질서일지 모른다는 김씨의 말에서 그가 이번 산문집에 투영한 존재론적 상상력을 엿볼 수 있다. 이승도 저승도 아닌 곳에서 귀기로 살아가는 자는 내년 출간될 그의 두번째 시집의 화두이기도 하다.

사실 여행산문집 출간이 새삼스럽게 느껴질 만큼 김씨의 삶은 그 자체가 여행이다. 20대 이후 그의 거처는 끊임없이 변했고 현재는 주소조차 없다. 대학을 세 번이나 옮겨 올해 서강대 철학과를 졸업했다.

카피라이터, 고교 교사, 학원 강사, 방송 작가, 영화제작사 직원 등 거쳐온 직업도 다양하다. 2003년 등단 이후 한참 동안은 야설 쓰기와 대필로 생계를 꾸렸다. 그는 “내 이력에 떳떳하지만 그걸 굳이 내세우고 싶진 않다”며 “작가의 고향은 오직 현재의 감정과 활동, 그리고 언어뿐”이라고 말한다.

그의 첫 시집 <나는 이 세상에 없는 계절이다> 는 출간 1년 만에 1만부 가까이 팔리며 시집 시장의 냉담함에 균열을 내고 있다. 김씨는 “시는 형식이 아니라 느낌”이라고 규정한다.

시인이 아니라도 누구에게나 시적 본능이 편재한다고 믿는다. 그는 “합리적, 논리적인 글쓰기는 형식을 익힘으로써 훈련될 수 있지만, 시의 언어엔 포맷이 존재할 수 없다”며 “시는 언어예술의 전위로서 당대의 모든 언어 질서와 싸워야 한다”고 말한다. 시적 느낌이 문자로만 구현될 필요가 없음도 물론이다.

올 초 자신의 희곡 <늑대는 눈알부터 자란다> 를 대학로 무대에 올린 일도 그에겐 시를 쓰는 일과 마찬가지다. 그는 6년 전 지인들과 함께 꾸렸던 독립영화사 ‘청춘’을 최근 ‘무경계 문화 펄프 연구소’를 표방하는 ‘츄리닝 바람’으로 확대 개편해 연극, 영화 등 다방면의 문화 장르에서 시적 미학을 펼치는 작업을 하고 있다.

글ㆍ사진 이훈성기자 hs0213@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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