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전 대통령의 정치 개입이 날로 두드러지고 있다. 그는 전 열린우리당 지도부를 만난 자리에서 대북송금 특검, 국정원의 도청 사건과 관련한 '국민의 정부' 국정원장 두 사람의 구속 등에 대해 강한 불만을 토로했다. 또 민주당 분당과 열린우리당 출범 과정에 대해 명백한 사과도 요구했다.
퇴임 이후 그의 정치적 발언은 끊이지 않았고, 둘째 아들 김홍업 의원의 보궐선거 입후보 이래 지나친 정치적 지분권 행사라는 의심을 불렀다. 이번 발언은 그런 색채가 한결 뚜렷하다.
대북송금 특검을 노무현 대통령의 정략으로 보는 데서는 김 전 대통령 특유의 합리적 균형감각이 무너졌음이 확인된다. 정치적 이용 가능성은 비밀송금 의혹에 대한 국민의 규명 요구라는 기본 전제 안에서나 가능했을 뿐이다.
'국민의 정부' 국정원장의 구속에 대한 불만 토로도 귀가 의심스럽다. 인권과 도덕성을 앞세운 '국민의 정부'에서 공공연히 도청이 행해진 사실에 국민이 얼마나 큰 충격을 받았는지 도외시하는 태도다.
더욱이 검찰의 신청과 법원의 결정으로 행해진 구속을 곧바로 정권의 행위로 바라보는 것은 민주화 이후 거론된 검찰의 정치적 독립은 물론 헌법적 요구인 사법권 독립마저 가벼이 여기는 시각이다.
"분당과 특검이 국민의 마음에 응어리를 남겼다"는 발언도 납득하기 어렵다. 대다수 국민의 불만은 총체적 국정 실패에 대한 것일 뿐 특정 정치적 이해와는 무관하다.
이번 발언이 통합민주신당의 정치적 주도권 싸움, 즉 친노 세력 견제용이라는 관측이 무성하다. 그러나 국민의 불만을 엉뚱한 곳에서 찾은 것으로 보아서는 정반대의 분석도 가능하다.
잇따른 정치공학적 이합집산 기법에도 불구하고, 민주신당에 대한 국민적 관심은 여전히 낮은 상황이다. 이 상황을 연출된 주도권 다툼으로 흔드는 동시에 어차피 민주신당에 따라다닐 국정실패 이미지를 희석하려는 것일 수도 있다.
어느 쪽이든 전직 대통령이 현실정치 제어판을 잡으려는 근본적 문제점에는 큰 차이가 없다. 누구보다 사리분별에 밝았던 그가 왜 이렇게 됐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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