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의 진화' 데이비드 버스 지음 / 전중환 옮김 / 사이언스 북스 발행ㆍ592쪽ㆍ2만원사랑, 혹은 섹스를 위해 벌이는 속임과 질투그 무수한 갈등 진화 심리학의 관점에서 풀어내
문제는 다시 남녀 관계다. 트랜디 드라마가 됐건, 블록버스터가 됐건 21세기는 진화 심리학(Evolutionary Psychology)이란 새 창을 통해 남과 여라는 영원한 테마를 다시 돌아다 보고 있다. 인간의 가장 깊숙한 곳에 숨겨져 있는 불가사의한 욕망, 사랑의 정체는 과연 무엇일까?
도대체 인간은 사랑, 또는 보다 정확히는 섹스를 위해 얼마나 감정 조작을, 질투를, 기만책을, 때로는 헌신 혹은 속임수라는 다양한 전술을 구사하는가. 짝짓기를 주제로 한 다윈의 성선택 이론이 암컷들의 위상에 지나친 무게를 둔 데 비해, 진화 심리학은 경쟁, 속임수, 갈등이 유발되고 발전하는 상황 등 인간의 행동에 내재된 엄청난 유연성에 주목한다.
6개 대륙과 5개의 섬에 위치한 37개 문화 속의 인간은 물론 동물들까지 문제 영역으로 포섭하는 이 책의 첫 째 미덕은 객관성이다. 캘리포니아 해안에 있는 바다 코끼리 수컷들은 교미기에 접어 들면 날카로운 어금니를 부딪쳐 가며 경쟁자 수컷들과 머리가 터지도록 싸운다. 5%의 수컷들이 85%의 암컷들을 독점, 약하고 겁많은 수컷들은 교미할 기회조차 못 가진다. 목숨을 걸고 얻은 암컷을 끌어 안고 플락시아 니악티카라는 벌레는 사흘 동안이나 교미한다.
그에 비해 인간은 얼마나 다양한 ‘전략’을 구사하는가. 속임과 질투에서 감정적 헌신이나 때로 강간까지, 책은 인간이 보여주는 성적 갈등의 천차만별한 양상을 깊이 있게 파헤쳐 보인다. 이 과정의 주도권은 진화심리학적 견지에서, 여성에게 있다.
절대 다수의 문화권에서 여성은 무능한 남성을 기피한다. 이것은 일단 임신하면 10개월 동안은 묶인 몸이 되는 여성의 진화론적 선택이다. 자원을 획득할 능력이 있다는 표시를 지닌 님성을 선호하고 야망이 없는 남성을 기피한다는 진화론적 예측이다. 역사를 통틀어 봤을 때, 남성이 여성들에게 제공했던 가장 중요한 자산 중 하나가 신체적 보호이기 때문이다. 그 같은 원칙은 현대 여성들이 배우자를 선택할 때 보여주는 다양한 양상들을 정확히 설명해 주는 것이기도 하다.
진기한 인류학적 발견들을 요령 있게 엮어 가는 책을 관통하는 논리는 진화 심리학이란 새 학문이다. 진화 심리학은 남녀가 열심히 추구하는 짝짓기 전략은 물론 인간 행동 속의 엄청난 유연성까지 설명할 수 있는, 근원적 심리 메커니즘에 대해 설명해 준다. 그에 입각한 다음과 같은 진술에 페미니스트들은 어떻게 반응할까? “인간 남성들은 평생 아무 여지나 섹스 상대로 삼으며 문란한 성생활을 즐길 것…(중략)…인간 여성들은 다양한 상대를 접하는 것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168쪽)
이 책은 사실 미국에서 초판이 출간된 1994년 바로 다음해 발 빠르게 번역됐던 전력이 있다. 그러나 그 옮긴이가 진화 심리학이란 새 분야의 전공자가 아니었다. 오역은 물론 자의적 첨삭이 연발, 아연실색할 노릇이었다고 역자 전중환 씨(이화여대 에코 과학 연구소 박사 후 연구원)는 초역 당시 임의로 누락된 부분까지 포함, 새롭게 옮겨야 했던 까닭을 말했다.
한국인 최초의 진화심리학 박사인 그는 “책 가운데 ‘여성의 은밀한 성 전략’ 부분에서 밝혔듯, 여성들의 혼외 정사가 왜 배란기에 급증하는가 하는 문제는 현재 진화심리학 초미의 관심사”라고 향후 연구 과제 중 하나를 소개했다. 국내판을 위해 전문 일러스트레이터가 제작한 천연색 도판 12컷이 책장 넘기는 재미를 더해준다.
600쪽 가까운 방대한 분량 아래, 천차만별의 사례와 다양한 이론으로 인간의 성 행태를 재조합한 이 책은 욕망의 이름으로 편집된 인간의 모든 것이다.
장병욱 기자 a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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