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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7회 봉황대기 고교야구/ 충암고, 봉황 품고 '명가 재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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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7회 봉황대기 고교야구/ 충암고, 봉황 품고 '명가 재건' 시작됐다

입력
2007.08.25 0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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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정에 들어서면 총알 타구가 여기저기를 헤집고 다닌다. 교장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각종 트로피가 가지런히 진열돼 있다. 누구나 충암고(이사장 이태건)에 가면 야구 마니아가 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1970년 개교와 함께 야구부를 창단한 충암고. 충암고는 창단 7년 만인 1977년 제7회 봉황대기 전국고교야구대회에서 우승하면서 ‘신흥 명문’으로 발돋움했다. 이어 11년 뒤인 1988년 봉황대기에서도 우승컵에 입을 맞추며 명실상부한 정상으로 자리매김했다.

충암고는 심재학(KIA) 등이 활약했던 90년엔 대통령배와 황금사자기에서 패권을 차지했고, 장성호(KIA) 박명환(LG) 등이 주축을 이뤘던 95년 다시 봉황을 품에 안았다. 창단 25년 만에 주요 전국대회에서 5차례나 우승을 일구며 ‘충암고 전성시대’를 열었다.

그러나 이후로는 침체기를 맞았다. 96년부터 지난해까지 11년 동안 서울서 열린 전국대회에서 단 한번도 정상에 서보지 못했다. 4강만 들어도 감지덕지할 정도였다. 충암고 김창록 교장은 “95년까지는 명문이었지만 이후 부진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올 봉황대기 우승을 충암 야구 부활의 계기로 만들어 나갈 것”이라고 했다.

충암고는 23일 막을 내린 제37회 봉황대기에서 강호들을 잇따라 물리치고 대회 12년 만에 정상에 복귀했다. 봉황대기 4회 우승을 이룬 충암고는 천안북일고와 함께 봉황대기 최다우승팀 타이기록을 갖게 됐다. 이번 우승은 ‘아마야구의 메카’ 동대문구장서 열린 마지막 고교대회라는 점에서 더욱 뜻 깊었다.

충암고 야구부는 모교 출신 이영복(38) 감독이 이끌고 있다. 충암고-홍익대 시절 3루수로 활약했던 이 감독은 92년 모교 코치로 부임했으며, 96년 사령탑에 올랐다. 그는 내야수 출신답게 짜임새 있는 수비야구를 강조한다. “학생야구는 결국 수비 싸움입니다. 비슷한 조건이라면 수비가 튼실한 팀이 이기는 거죠. 수비가 강하다는 것은 기본기가 잘돼 있다는 얘기입니다.”

이 감독이 입버릇처럼 강조하는 것 중 하나가 ‘학생 야구’다. 학생답게 순수와 열정을 갖고 있어야 좋은 선수가 될 수 있다는 게 이 감독의 지론이다. “선수들에게 프로의 꿈은 갖되 프로 흉내는 내지 말라고 말합니다. 가장 학생답게 야구를 하는 게 프로가 되는 지름길이죠.”

10년 이상 침체기를 겪었던 충암고는 동대문구장서 열린 가장 큰 대회인 봉황대기 우승을 명가 재건의 기폭제로 삼는다는 야심이다. 충암고는 봉황대기 우승에 만족하지 않고 우수선수 확보와 든든한 지원으로 정상을 지키겠다고 다짐하고 있다.

김창록 교장은 “이홍식 충암학원 전 이사장이 야구부에 전폭적인 지원을 하고 있고, 양승우 야구발전위원회장을 비롯한 동문들도 아낌 없는 성원을 보내준다. 공부와 야구를 함께 잘할 수 있는 충암고를 만들기 위해 다시 시작한다는 각오로 뛰겠다”고 청사진을 제시했다.

최경호기자 squeeze@hk.co.kr양준호기자 pire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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