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나는 세계에서 두 번째로 높은 산, K2(8,611m) 정상에 서 있다. 청명한 하늘 아래 히말라야의 은빛 설봉들은 발아래 펼쳐져 자연의 무한함을 향유할 차례다.
그러나 아무런 느낌도 없다. 아니 느낄 수가 없었다. TV에 나오는 어느 산악인처럼 감격의 눈물도 없다. 내 마음 안에는 불과 몇 시간 전 마지막 캠프에서 같이 출발 동행하던 네팔 친구 니마 셰르파가 추락하여 사라진 상실감으로 가득했다. 허망했다.
우린 함께 자일을 묶고 지표의 3분의 1밖에 안 되는 희박한 공기 속에서 수직으로 바짝 선 암벽과 빙벽을 올랐다. 영하 30도의 추위, 말라 버스럭거리는 목구멍에 보온병의 차 한 잔을 함께 나눠 마시며.
그렇게 인내의 한계를 넘어 오른 정상에 그는 보이질 않는다. 이미 올 봄 나는, 네팔의 에베레스트(8,848m)에서 후배 두 명을 잃었다. 내 눈은 빈 허공으로 향한다. 네팔에 남겨진 그의 부인과 어린 두 딸은 돌아오지 않는 남편, 아빠를 그리며 어떻게 남은 삶을 살아갈까.
K2 원정을 떠나오기 전 읽었던 책〈엄마의 마지막 산 K2〉는 들려준다. 두 아이의 엄마 알리슨 하그리브스는 에베레스트를 혼자서 그것도 무산소로 오른 영국의 유명산악인이었다.
그녀가 후에 K2를 등정하고 하산 도중 실종되었을 때 남겨진 그녀의 가족, 저자인 제임스 발라드와 톰, 케이트는 심장을 잃은 것보다 더 큰 상실감을 겪는다. 더욱이 어린 톰과 케이트는 죽음의 개념을 이해하기에는 아직 너무 어렸다. 아이들은 엄마의 마지막 산 K2에 가보길 원한다.
해서 가족 세 명은 파키스탄의 K2로 여행을 떠난다. 이들은 적절히 슬픔과 상실감을 표출함으로써 스스로 극복하고 치유하게 된다. 아이들은 죽음을 이해하고 엄마의 마지막 산 K2가 보이는 지점에서 엄마에게 ‘안녕’을 고하며 돌탑을 쌓는다.
정상이 끝은 아니다. 누구나 정상에 서면 반드시 내려와야 한다. 여행이 끝난 후 저자는 말한다. 무엇보다도 우리는 하루하루 세상을 살아가는 일상의 산이 가장 오르기 어렵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그것은 바위와 얼음으로 이루어진 산들보다 어렵습니다. 진정으로 중요한 것은 각자 자기 방식대로 삶의 산을 오르는 일이 아니겠습니까?
김창호ㆍ히말라야-카라코람 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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