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프릴 카터 지음ㆍ조효제 옮김 / 교양인ㆍ600쪽ㆍ2만9,000원
이라크 파병 반대운동, 농민단체의 미국산 쇠고기 불매운동, 비정규직 해고와 관련된 이랜드 노조의 파업. 여전히 거리가 뜨겁다. 1987년 시민항쟁 이후 우리사회에는 절차적 민주주의가 확립됐다.
그러나 오히려 격렬해지는 시위가 보여주듯 많은 이들은 지금의 민주주의체제를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반영할 수 없는 틀로 여긴다. 한편으로는 권위주의 시절 민주주의 쟁취를 위해 거리로 뛰쳐나가던 열정을 피로감으로 대체하며 노골적으로 정치적 무관심을 표현하는 이들도 늘었다.
민주화가 진행됐지만 거리로 나선 자, 침묵하고 있는 자 모두 체제에 대해 직ㆍ간접적인 불만을 표시하고 있는 것이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일까? 그것은 우리에게만 해당되는 것일까? 어떤 방법으로 그 무력함을 돌파할 수 있을까?
에이프릴 카터 전 옥스퍼드대 교수는 민주주의를 추동했던 파업과 불매, 가두봉쇄, 시민불복종 같은 ‘직접행동(direct action)’ 이라는 창을 통해 현행 대의제 민주주의체제의 한계를 들여다본다.
이 분야에 대한 기존 연구가 권위주의 정권에 대한 저항수단으로서의 직접행동의 의미를 파악하는데 집중된 반면, 저자는 지금까지 고안된 가장 완벽한 체제인 ‘대의민주주의’ 체제 내에서 그것의 유효성을 입증하는데 진력한다.
직접행동의 정당성에 대한 저자의 설명은 친절하다. ‘정당화할 수 있는 직접행동의 한계는 어디까지인가?’ ‘폭력과 결합된 직접행동은 용인돼야 하는가?’ 같이 일반인들이 품음직한 의문들까지 다양한 사례를 들어 설명한다. 지은이는 직접행동의 정당성을 좌우하는 것은 행동에 나선 이들의 권력관계와 도덕성이라고 파악한다.
그는 지배엘리트 계층과 비교해 자기이익을 거의 반영할 수 없는 여성 빈곤층 이주노동자 난민 등과 같은 사회적 약자들, 심지어는 과거에 비해 서구사회에서는 크게 약화된 노동조합이 공개적으로 저항하는 방식은 정당하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현재 부르주아 민주주의가 심각한 ‘결손’ 을 내포하고 있으며 전지구적으로 확산되는 신자유주의는 이들의 행동에 정당성을 부여한다”고 부연한다. 그 ‘결손’이란 민주주의의 중요한 가치인 사회적 평등의 훼손이다.
사회적 약자들에 비하면 관료집단, 미디어, 교육기관, 정치인들과 긴밀히 관계를 맺으며 자기주장을 펼 수 있는 초국적 금융자본, 다국적기업과 같은 집단들의 영향력은 너무나 세고 이는 곧 민주주의에 위기를 불러올 수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법과 기준이 공적으로 인정된 기준에서 크게 일탈할 때는 그 사회의 정의관념에 직접 호소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시민불복종을 정당화한 자유주의 사상가 존 롤스, “시민불복종은 하나의 입헌정치체제에 있는 시민집단의 공적인 행위”라고 주장한 철학자 한나 아렌트 등의 이론을 들어 체제 내에서의 ‘직접행동’의 필요성을 뒷받침한다.
책을 번역한 조효제 성공회대 아시아NGO대학원 교수는 “직접행동민주주의는 시민대표들이 절차적 대표성의 장막 뒤에 숨어 자의적이고 비민주적인 행위를 저지르지 못하도록 경고하는 중요한 수단”이라며 “직접행동은 대의민주주의적 채널과 적절하게 역할분담을 함으로써 민주주의의 실질성을 강화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왕구기자 fab4@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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