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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교야구‘동대문구장 시대’ 봉황대기 끝으로 마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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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교야구‘동대문구장 시대’ 봉황대기 끝으로 마감

입력
2007.08.24 0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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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야구의 메카’ 동대문구장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23일 동대문구장서 벌어진 제37회봉황대기 전국고교야구대회 결승전이 충암고의 통산 4번째 우승으로 끝나면서 아마야구의 전성시대를 열었던 고교야

구의‘동대문 시대’가 막을 내렸다. 10월 17일부터열리는 전국대학야구대회를 끝으로‘공식 동대문시대’는 마감되지만 그라운드에 몸을 던지는 까까머리 고교생도, 목청껏 소리를 질렀던 모교 선배들의 훈훈한 모습도 더 이상 볼 수 없게 됐다.

동대문구장은 1925년 10월 태어났다. 당시 이름은 경성운동장. 성 동쪽의 들판이라는 의미에서 ‘성동원두(城東原頭)’로도 불렸다. 1959년에는 서울운동장으로 이름이 바뀌었고, 1984년 지금의 동대문구장으로 개칭됐다.

82년 프로야구 출범 전만 해도 동대문구장은 고단한 서민들의 휴식 공간이었다. 75년부터 동대문구장에서 매표소 업무를 맡고 있는 고경만(59)씨는 당시를 이렇게 회상했다. “표 한 장 사려고 평화시장 앞까지 300m 넘게 줄을 섰다니까. 방망이 들고 암표상 잡으려고 무던히도 뛰어다녔지.”

교복 차림의 재학생과 넥타이를 맨 선배들이 어깨동무를 한 채 ‘아리랑 목동’을 불렀고, 배가 고프면 근처 중국음식점에 전화를 걸어 자장면과 소주 한 병을 배달시켜 먹는 것은 동대문구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진풍경이었다.

한국에서 야구를 한 사람 치고 동대문구장에 얽힌 추억 하나쯤 없을까마는 최고의 볼거리 였던 70~80년대 초반 고교야구 하면 박노준의 사고장면이 가장 먼저 오버랩 된다.

박노준(45) SBS 해설위원은 생일은 잊어도 81년 8월26일은 잊지 못한다고 했다. 당시 박노준은 여학생잡지 팬 투표에서 조용필 전영록보다 높은 인기를 누렸다.

선린상고(현 선린인터넷고) 3학년이던 박노준은 경북고와의 제11회 봉황대기 결승전에서 1회말 홈 슬라이딩을 하다가 스파이크가 땅에 박히면서 중상을 입었다. 왼 발목 복사뼈가 골절되고 인대가 모두 끊어진 박노준은 철과 나사로 뼈를 고정시키고 인대를 잇는 대수술을 받아야 했다.

“지금도 동대문구장만 생각하면 기억이 아련해집니다. 영광과 아쉬움, 청춘이 서린 곳 아니겠어요? 봉황대기 결승전에서 발목 다친 일은 지금도 어제 일처럼 선명해요. 수술 후 병원에 누워 있는데 숙명여고, 상명여고, 수도여고 등 여학생 팬들이 얼른 일어나라고 선물을 주더라고요.”

하지만 동대문구장으로 상징되는 아마 야구의 열기도 82년 프로야구 출범과 함께 내리막길을 걸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종도의 역전 만루홈런으로 상징되는 프로야구 개막전이 동대문구장에서 태동했지만 그 해 9월 잠실구장이 생기면서 동대문구장은 팬들의 발길로부터 멀어졌다.

하지만 무표정하기로 소문난 고경만씨도 이날 만큼은 입가에 미소가 떠날줄몰랐다.“ 오늘 모처럼 일할 맛 좀 나겠는 걸.” 동대문구장의 마지막 경기여서그랬는지 구장 주변은 시작 2시간 전부터 야구팬들로 북적거렸다.

1974년부터 고교야구를 즐겨 보기 시작했다는 김희갑(48^서울 동대문구 전농동)씨는 마지막 날을 그냥 보낼 수 없어 야구장을 찾은 케이스.“ 빅 게임 때는 암표상이 도리어 입장료의 3배를 주고 입장객의 표를 샀죠.” 그의 말끝에서 고교야구에 대한 애정이 묻어났다. 이날 양교 응원단 등 올시즌 고교야구 최다관중인 1만5,000여명의 팬들은 동대문구장의 고별경기를 지켜보며 열띤 응원전으로 동대문구장의‘마지막밤’을 축제로 승화시켰다. 오는 11월이면 동대문구장은 82년 역사를 마감하고 철거되며, 그 자리에는 총 사업비 2,274억원을 들여 디자인센터와 녹지공원이 조성될 예정이다.

이날 짜증나는 열대야에도 불구하고 고교야구의 동대문구장 마지막 경기를 지켜 본 야구팬들은 아쉬운 듯 두산타워의 휘황찬란한 불빛 속으로 무거운발길을 돌렸다. 선동열 박찬호 이승엽의 성장 과정을 묵묵히 지켜보았던 조명탑이 하나, 둘꺼지면서 동대문구장은 어둠과 함께 역사 속으로 쓸쓸히 사라져갔다.

최경호 기자 squeez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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