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일요일, 모처럼의 화창한 날씨가 반가운 나머지 남산에 올라 ‘서울 관광’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오랜만에 남산 타워에 가는 김에 아예 케이블카를 타보기로 했다. 남산 중턱에 차를 세우고 케이블카를 타니, 세상에, 기본적인 시설이 1962년 개통 때와 다름없는 수준이다.
정원 이상의 승객을 가득 태운 땀내 나는 케이블카가 박정희 정권 시절의 추억을 고스란히 떠올려주는 것은 고맙지만, 안전이나 쾌적함과는 영 거리가 멀다. 오호 통재라. 운영회사가 과연 보험을 들었을까 고민하다보니, 어느덧 남산 꼭대기였다.
1975년 완공된 남산 타워는 현재 YTN에 인수돼 CJ가 위탁ㆍ운영하고 있다. 그들은 낙후한 시설을 개선했지만, 홍콩 등 잘 알려진 국제도시들에 비하면 턱없이 수준이 낮다. 특히 곳곳에서 돌출하는 불유쾌한 음악들은 쾌적함을 앗아갔다. 그래서 나는 조용히 서울을 내려다보기 위해 식당에 자리를 예약하고 2시간의 조망권을 얻었다.
일단 서울의 스카이라인이 많이 변했다는 점에 놀랐다. 그리고, 서울의 새로운 스카이라인을 규정하는 것이 업무용 빌딩이 아니라 도곡동 타워팰리스, 목동 현대하이페리온, 삼성동 아이파크 등의 초고층 아파트라는 사실에 또 놀랐다. 두 눈으로 각 아파트 군단의 위용을 확인하니 어이가 없을 지경. ‘대체 저 많은 아파트의 거주자들은 다 어디서 일을 하는 것일까?’ 하는 싱거운 의문마저 들었다.
‘서울의 랜드마크’ 왕좌는 개항 이후 그 주인이 계속 바뀌어왔다. 1898년 완공된 종현성당(명동성당), 1935년에 들어선 경성부민관(서울시의회) 등은 고층빌딩은 아니지만, 당대엔 높은 건축물로 랜드마크 노릇을 했다. 서울에 본격적인 마천루형 빌딩이 들어선 것은 1971년 완공된 3ㆍ1빌딩이 처음이었다. 김중업이 디자인한 이 빌딩은 미즈 반 데어 로에가 뉴욕에 시운 기념비적 건축물인 시그램 빌딩의 미니어처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3ㆍ1빌딩이 박정희 정권 하의 경제성장을 상징했다면, 전두환 정권 하의 경제발전을 웅변한 것은 63빌딩이었다. 1985년에 개관한 이 빌딩은 국제적인 건축사무소인 S.O.M이 디자인했고, 내진 설계 등 첨단 건축 공법으로 화제를 모았다. 그러나 1980년대 서울 도심의 스카이라인을 실질적으로 지배한 것은 1979년 완공된 롯데호텔이었다.
이후 총독부 건물이 철거됐고, 3ㆍ1고가도로가 사라졌고, 새로운 서울역과 용산역이 들어섰고, 청계천이 복원(?)됐으며, 용산의 미군기지가 부분적으로 이사를 나갔고, 국립중앙박물관이 용산에 들어서는 등, 서울엔 크고 작은 건축적 변화가 일었다.
남산 타워에 올라 서울의 사방을 둘러보며 이러저러한 건축적 문제들을 생각하니 몇가지 건축적 필요성을 절감할 수 있었다. 첫째 랜드마크로서 스카이라인을 규정할 업무용 고층빌딩의 필요, 둘째 81만평에 이르는 용산 미군기지 부지를 100% 녹지로 구성된 시민공원으로 사수해야 할 필요, 셋째 거대한 한강을 수상물류의 인프라로 적극 활용해야 할 필요 등이다.
초고층 빌딩에 대한 갈증은 마포 상암동 디지털미디어센터(130층, 580m)나 서울시와 코레일이 공동 개발하는 용산 국제업무지구에 들어설 초고층 빌딩(150층 620m) 등이 실현되면 해소될 것 같다. 그러나 실제 서울의 이미지에 큰 영향을 줄 사업은 세운상가 제4구역 도시환경정비사업에 의해 추진 중인 세운상가 재개발이 아닐까 싶다.
지명 공모를 통해 설계를 맡은 ‘쾨터 킴+무영+동우’의 컨소시엄은 종묘에서 남산으로 이어지는 녹지축을 골자로 한 설계안을 내놓았고, 그를 기반으로 사업이 실제 추진 중이다. 하지만, 이 사업에 대해선 찬반양론이 분분하다.
비판자들은 녹지축 운운하는 것이 종묘 앞에 36층짜리 건물을 지어 올리기 위한 핑계에 불과하다고 믿고 있다. 만약 어떤 신축 건물에 가려 남산 타워에서 종묘를 조망할 수 없게 된다면, 어떨까? 나는 미쳐버릴지도 모른다.
그 모든 건축적 필요에 앞서, 바야흐로, ‘스카이라인 조절 위원회’의 설립이 시급한 시점이라는 생각이다.
사진 임근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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