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 가지 소리보다 침묵이 응결된 사진 한 장이 더 큰 울림을 줄 때가 있다. 22일부터 서울 인사동 아트비트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집시, 바람새 바람꽃> 전 사진에서 그런 메아리가 들린다. 노숙자, 정신요양원, 비전향 장기수 등 세상의 그늘진 풍경을 필름에 담아 온 사진작가 한금선(41)의 첫번째 개인전이다. 집시,>
“다가가기 전에는 알 수 없어요. 5m, 3m, 1m 앞으로 갈수록 더럽고, 마약이나 하고, 소매치기로 살아간다고 여겼던 사람들의 진짜 모습이 보이는 거죠.” 한씨는 자신의 사진 작업을 ‘편견과의 싸움’이라고 규정했다. 하지만 세상에 내 놓는 첫번째 싸움의 기록이 집시(gypsy)인 것은 의외였다.
“사회적 고민을 공유하기에는 동유럽 빈민촌은 심리적, 물리적으로 거리가 멀어요. 하지만 집시 마을에서 작업하면서 내가 세상과 만날 수 있다는 희망을 얻었어요. 이 사진들은 사진가로서의 ‘출사표’ 같은 거예요.”
한씨는 사진을 전공하지 않았다. 단과대 학생회장과 총학생회장 대행이라는 타이틀을 가졌던 심리학과 ‘85학번’은 예술과 가까울 수가 없었다. 졸업 후 ‘사회와 어떻게 결합해야 하는지 길을 잃어’ 시작된 방황은 연극배우, 학원강사, 편집 디자이너, 커피장사 등 몇몇 직업을 거치면서도 계속됐다.
그러다가 1990년대 중반, 우연히 사진 한 장이 눈에 들어왔다. “편집 일을 할 때 울산 자동차공장의 노동자 포트레이트를 봤어요. 그 때의 전율은 도저히 잊을 수가 없어요.”
이후 그는 렌즈를 통해 세상과 대화하는 방법을 찾았다. 가출 청소년과 밤거리를 함께 거닐고 시위 현장을 찾아 다니며 정신 없이 셔터를 눌렀다. “학생운동을 하다가 정신이 이상해져 카메라 메고 데모 현장만 떠도는 미친년 취급도 받았죠.” 그리고 98년 ‘소통’의 수단이 된 사진을 공부하러 7년 간의 프랑스 유학길에 올랐다.
2005년 귀국한 한금선은 국가인권위원회의 사진 프로젝트에 참여해 사회성 짙은 작품을 발표하고 있다. 그러나 그의 사진에서는 전투적 메시지보다는 깊은 서정성이 느껴진다. “터널 속에서 비 오는 길을 보는 것과, 터널을 나와 비를 맞으며 길을 보는 것은 전혀 달라요. 소외된 곳의 풍경이 어두울 것이라는 인식은 편견일 뿐이에요.”
한금선의 다음 작품 주제는 농민이다. “한미 FTA 협상을 지켜보면서 땅의 지혜를 품고 있는 농민 사진 한 장 없다는 사실이 너무 안타까웠어요. 그래서 당분간은 촌사람으로 살 생각이에요. 전북 임실에 있는 김용택 시인의 고향 집에 군식구가 되기로 했어요. 김 시인의 어머니가 언제 내려오냐고 벌써 성화예요.”
글 유상호기자 shy@hk.co.kr사진 배우한기자 bwh3140@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