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전 대통령이 23일 민주당 분당사태와 대북송금 특검 등을 전에 없이 강하게 비판한 것은 대통합민주신당 창당 이후 세를 확대하고 있는 친노 진영에 대한 경고 메시지이자 견제라는 분석이다.
김 전 대통령은 노무현 대통령 집권 후 노 대통령과 친노 인사들이 주도한 사건들을 거론, 노 대통령과 친노쪽에 칼끝을 겨눴다. 민주신당에서 손학규 전 경기지사, 정동영 전 우리당 의장 등 비노 대선주자들이 1, 2위를 달리고 있지만, 노 대통령을 업은 친노 주자들의 움직임이 만만치 않다는 판단에 따라 차단막을 친 것으로 풀이된다.
노 대통령 세력이 민주신당에서 과도한 영향력을 가지면 정권재창출이 위협 받을 수 있다는 인식인 셈이다. “일단 친노 세력은 자중할 필요가 있다”는 주문으로도 들린다.
김 전 대통령은 대통합 과정에서 `과도한 대선개입'이라는 일각의 비판을 감수하면서 통합작업을 독려했지만, 최근 민주신당 내 친노 성향 의원들 사이에 “DJ가 더 개입하면 신당에 역풍이 불 수 있다”는 발언이 나온 것도 김 전 대통령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을 것이란 관측도 있다. 민주신당의 양대 주주격인 노 대통령과 김 전 대통령의 힘 겨루기가 벌어지고 있는 게 아니냐는 해석까지 가능한 상황이다.
김 전 대통령이 지적한 부분은 대북송금 특검, 민주당 분당, 안기부 X파일 등 세 가지. 그는 특히 자신의 가장 큰 치적인 햇볕정책을 뿌리째 흔들었던 대북송금 특검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민족적인 일에 정략적으로 상처를 입힌 것에 대해 사과했어야 했다”는 것이다.
당시 한나라당이 추진한 특검에 동의했던 노 대통령에 대한 섭섭함이다. 그는 2003년 민주당과 우리당 분당 사태를 비판, 당시 분당을 주도했던 참여정부 핵심 세력에 대한 불만도 드러냈다.
이는 우리당을 흡수한 민주신당 자체에 대한 비판으로도 보인다. 민주신당이 143석의 원내 제1당이 됐지만 지지율이 아직 바닥인 이유가 우리당 시절 공과에 대한 처절한 반성이 없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김 전 대통령이 “대통합 과정에서 우리당이 책임을 지고 국민에게 사과할 것은 사과하고, 청산할 것은 청산했어야 했다”고 한 대목이 이를 반영한다.
김 전 대통령이 “386 정치인들이 위기에 처해 있다”고 말한 대목도 의미심장하다. 민주신당의 주축을 이루는 386 정치인들이 대통합 이후 신당 활동 과정에서 전혀 힘을 쓰지 못하는 데 대한 질책으로 풀이된다.
그는 “지난 총선에서 국민들이 전폭적인 지지로 국회의원에 당선시켜 줬는데 국민과 함께 하지 못했고 국민의 뜻에 부응하지 못했다”며 “전라도와 경상도, 농촌과 도시를 가릴 것 없이 배낭을 메고 뛰어들어서 국민을 만나 잘못한 것은 사과하라”고 주문했다.
정상원기자 orno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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