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ㆍ예술ㆍ종교계 인사들의 잇단 학력 위조 파문으로 세상이 시끄럽다. 이번 파문은 '학력 위조'로 뭉뚱그려지만 한국사회는 언젠가부터 거짓말 릴레이로 날이 지새고 있다.
기억나는 대로, 황우석 사태로부터 시작된 이 릴레이는 대학교수 출신 교육부총리 임명자가 논문표절 의혹으로 사퇴하고, 명문 사립대 총장이 같은 논란으로 사임한데 이어, 유명 방송인ㆍ화가 등의 대필 사건으로 번져왔다.
사회지도층 혹은 유명인사라고 통칭되는 이들이 이 모양이니 한국사회라는 것이 어떻게 보면 사상누각이었던 꼴이다. 하지만 이번 파문의 당사자들이 "학력 위조가 잘못인 줄 알았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는 바람에 바로잡지 못했다, 어쩔 수 없었다"는 식으로 변명하거나, 그 원인을 분석한다는 사람들이 "우리 사회의 뿌리깊은 학벌주의 때문에 생긴 일" 운운 하는 것을 볼 때면 참을 수 없는 심정이 된다. 학벌주의가 범인이고 거짓말을 한 이들은 어쩔 수 없는 희생양들이라는 말인가.
더 근본적으로 따져봐야 할 것은 표절이든 학력 위조든 그 문제의 중심에는 항상 한국의 대학이 위치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대학의 교수라는 사람들이 논문을 표절하고, 학력 위조 파문에서 한국의 대학들은 그것을 방관 내지 묵인하거나 해당 인사들의 유명세를 오히려 이용해온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의 대학들은 언젠가부터 '대학도 세계화'라는 미명 하에, 이름값 하겠다 싶으면 분야를 가리지 않고 초빙ㆍ대우ㆍ겸임 등등 교수 직책 앞에 갖가지 수식을 붙여 사람들 데리고 가서 학생들 앞에 세워왔다.
무슨 최고는 또 그리도 많은지, 어느 대학이고 최고경영자니 최고지도자니 최고위니 '최고' 자 붙인 갖가지 과정들을 만들어 이름값ㆍ돈값 하는 사람들 패거리 만들어주기 바쁘다. 학벌주의 조장이 따로 없다.
이런 거 통째로 나쁘다는 말은 아니다. 상아탑 말하면 웬 철지난 소리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대학이야말로 돈과 이름 떠나서 한 사회의 현재와 미래의 중심을 잡아나가야 할 기관이다.
최근 출간된 <교양, 모든 것의 시작> 이란 책에서 수전 손택 이후 미국 최고의 지성으로 꼽힌다는 시카고대 노마 필드(60) 교수가 "이라크 전쟁은 미국에서 인문교양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결과"라고 말한데 공감이 간다. 대학은 그런 교육의 분위기를 만들어야 하는 곳 아닌가. 교양,>
자립ㆍ자율교육의 성공 사례인 경남 거창군의 거창고 강당에는 '직업 선택의 십계'가 액자에 걸려있다고 한다. 1 월급이 적은 쪽을 택하라, 2 내가 원하는 곳이 아니라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을 택하라, 3 승진의 기회가 거의 없는 곳을 택하라, 4 모든 조건이 갖추어진 곳을 피하고 처음부터 시작해야 하는 황무지를 택하라, 5 앞을 다투어 모여드는 곳을 절대 가지 마라. 아무도 가지 않는 곳을 가라, 6 장래성이 없다고 생각되는 곳으로 가라, 7 사회적 존경을 바랄 수 없는 곳으로 가라, 8 한가운데가 아니라 가장자리로 가라, 9 부모나 아내가 결사반대를 하는 곳이라면 틀림이 없다. 의심치 말고 가라, 10 왕관이 아니라 단두대가 기다리고 있는 곳으로 가라.
거창고 십계의 정신은 남 위에 군림하려 하지 말고, 허울 뿐인 명예에 사로잡히지 말고, 더불어 살아라는 메시지다. 고교생들에 앞서 우리 대학사회, 학력 위조를 해서라도 남 앞에 나서고 싶어하는 어른들이 새겨야 할 교훈이 아닐까 한다.
하종오 문화부 부장대우 joh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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