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봉 3,000만원에 전업 주부와 자녀 2명을 거느리고 있는 봉급 생활자 A씨는 23일자 조간신문에 난 ‘2007년 세제개편안’을 보고 어리둥절했다.
이는 지난해 정부가 출산장려를 위해 자녀를 많이 둔 가구의 세금은 깎아주고, 독신자에게는 세금을 더 물리겠다고 했지만, 참여정부 임기말 세제 개편안에선 이 같은 원칙이 무너졌기 때문이다. A씨는 지난해 개편안대로라면 올해 6만원을 덜 내고, 자신과 같은 연봉을 받는 독신자는 17만원을 더 납부해야 한다.
이번 개편안에서 가장 논란의 불씨가 되고 있는 것은 다자녀가구의 가장에게는 감세 혜택이 없다는 점. 이에 따라 A씨는 내년부터 세금인하 혜택을 전혀 받지 못하지만, 그와 소득이 같은 독신 근로자는 18만원, 무자녀 2인 가구주는 8만5,000원의 세금을 덜 내게 된다.
국민들은 “참여정부의 다자녀 가구 세제 지원이 1년 사이에 이렇게 갈팡질팡할 수 있느냐”며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참여정부가 줄기차게 강조해 온 “보다 넓은 세원과 비과세 감면 축소 정비를 통한 공평 조세원칙 확립”방안이 이번 세제개편안에서 무너진 것도 심각한 문제다. 지난해 재정경제부는 ‘06년 세제개편안’에서 “최근 5년간 평균 비과세ㆍ감면액 증가율(8.6%)이 국세증가율(7.3%)을 넘어 과세기반이 잠식되고, 비과세ㆍ감면이 기득권화ㆍ항구화하는 경향이 있어 조세의 중립성과 형평성을 저해한다”며 “향후 비과세ㆍ감면 비중을 축소”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올해 세제개편안을 보면 기업 연구ㆍ개발(R&D), 해외 자원개발, 개성공단 투자 활성화를 명분으로 한 각종 공제를 늘렸다. 이와함께 가업상속, 배우자 증여 등 중소기업 혜택, 출산ㆍ입양 장려 소득공제, 농어촌 난방비 인하 등 굵직한 것만 추려도 새로 생기는 비과세ㆍ감면 확대방안이 두자리 수가 훌쩍 넘는다.
올해 시한이 완료돼 폐지 예정인 22개 각종 조세안 중 절반 가까운 9개 법안도 연장(축소 3개 포함)됐다. 이 중에는 정부가 폐지를 공언해왔던 ‘신용카드 사용금액에 대한 소득공제’를 비롯해 ‘기관투자자의 주식양도차익 법인세 비과세’나 ‘창업자금에 대한 증여세 특례’ 등 과세 형평성 논란이 예상되는 조세지원방안도 포함돼 있다.
숱한 반대 여론 속에서도 강행하고 있는 ‘지역균형발전’ 정책도 지방 이전기업에 대한 법인세 인하 같은 조세감면 혜택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어 중장기 국가재정에 적지않은 부담이 될 전망이다.
이미 13개에 달하는 지방 이전 촉진 세제지원 방안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지방에 창업한 중소기업이나 이전한 중소기업은 물론 이미 지방에 있는 중소기업에 대해서도 최고 70%까지 법인세를 감면하는 방안을 이번 세제안에 추가했다.
최영태 참여연대 조세개혁센터 소장은 “올해 세제개편안은 참여정부가 그 동안 천명해 온 조세 원칙을 완전히 무너뜨리고 선거용 선심성 정책을 나열한 것에 불과하다”면서 “한편에서는 재정지출 확대가 불가피한 각종 로드맵을 양산하면서, 다른 쪽에서는 세수 감소가 예상되는 재정정책을 만들어 내는 모순에 대해 정부는 스스로 설명해야 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정영오 기자 young5@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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