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원고를 들고 출판사를 찾아가 읍소해야 하는 줄 알아요. 그럴 필요 없이 출판사 홈페이지의 투고란을 이용하면 됩니다. 또 블로그 관리를 잘하면 거꾸로 출판사에서 연락이 오기도 하니 정말 책 내기 쉬워졌지요."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지만 시간의 나침반은 한 곳에 머무는 법이 없습니다. 마음 한 자락에 소슬한 가을바람이 일기 시작했으니까요.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라는 데 모처럼 펼쳐 든 책이 바로 내가 쓴 책이라면 어떨까 상상해봅니다. 저자라는 지시어 옆에 내 이름 석자가 활자로 꾹꾹 찍힌 책. 큰 인물 되라고, 행복하게 잘 살라고 부모님이 지어주신 이름을 이제야 제대로 대접한 것처럼 뿌듯하지 않을까요.
출판환경이 달라지면서 굳이 문학청년이 아니어도 일상에서 걸러낸 나만의 감성이나 직업적 전문성, 블로그나 취미 활동을 통해 쌓아온 독특한 경험과 비법들을 책으로 출간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습니다. 잘만 팔리면 매년 인세도 받을 수 있고, 이력서에 품격을 더해주며, 가끔은 연락이 끊겼던 첫사랑과의 극적인 재회도 실현시켜주는 고마운 기회. 바로 출판의 매력이 아닐까요.
글이라고는 초중등학교때 억지로 쓴 일기가 전부라 글 쓰는 게 두렵다는 분들에게 최근 자기계발서 <2주에 1권 책 읽기>를 낸 초보 저자 윤성화(29)씨를 소개합니다. 4전5기끝에 저자의 꿈을 이룬 윤씨가 직장인 책 내기 성공요령을 귀띔합니다.
온라인 서점 ‘알라딘’의 5년차 MD(상품 기획자) 윤성화씨는 불과 1년 전만 해도 평범한 직장인에 불과했다. 서적과 관련된 직업을 갖고 있지만 책을 읽고 메모하는 것을 좋아할 뿐 흔히 말하는 ‘글발’과는 거리가 멀었다. 처음에 직장인 독서 관련 책을 쓰기로 마음 먹고 거의 완성된 수준의 원고를 들고 출판사를 노크했지만 4번이나 퇴짜를 맞았다. “책을 낸다는 것, 글을 쓴다는 것이 두려움 그 자체 였었죠.”
그러나 책을 내겠다는 뚝심은 밀리지 않았다. 연거푸 거절 당했지만 직업상 독서에 대한 노하우 만큼은 꾸준히 쌓여서 주변사람으로부터 ‘정말 해박하다’‘책 써도 되겠다’는 소리를 들었다. 언뜻 보기엔 소소한 정보라도 우리 사회 누군가는 긴요한 것일 수 있는 법. 남들은 모르는 독서요령을 알리고 다른 한편 그동안 정리하지 못했던 업무지식을 집필을 통해 일목요연하게 정리해보자는 소박한 꿈은 갈수록 커졌다.
글솜씨가 아닌 내용으로 승부하자는 결의를 다진 윤씨는 지난해 봄부터 평소 꼼꼼히 챙겨 놓은 메모들을 뒤졌다. 1년에 걸친 여정이 시작됐다. 우선 가상의 ‘독자 모델’을 만들었다. 회사 친구인 모씨. 1년 동안 책 한 권도 못 읽었다며 투덜대는 그가 윤씨가 정한 미래의 독자다. ‘과연 모씨라면 어떤 정보를 줬을 때 더 이상 불만을 말하지 않고 책을 즐겁게 읽을까’라는 질문에서부터 원고의 방향을 잡은 것이다.
가제를 먼저 정했다. 최소한 2주에 한 권을 읽도록 하자는 첫 발상에 맞춰 책의 구성요소를 적어 내려갔다. 독서를 습관으로 만드는 방법, 책을 많이 읽으면 좋아지는 것들에 대한 그야말로 ‘쪽지 글’을 쓰기 시작했다.
“문장이 되고 안 되고는 크게 따지지 않고 지하철 출퇴근 길을 이용해 생각나는 데로 수첩에 글을 적기 시작했어요. 대충 쓴 글을 퇴근 후 집에서 컴퓨터로 차근차근 옮겼죠. 이렇게 2달 정도 하니까 원래 상상했던 전체 원고 50% 정도의 틀을 잡게 됐습니다.”
경험과 업무과정에서 습득한 정보들이라 초기 원고 작성이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문제는 여기부터. 과연 어느 출판사가 새내기 저자의 글을 받아줄 것인가. 윤씨는 출판기획서와 만들어놓은 초고를 문서파일로 묶어 자기계발서를 주로 출간하는 출판사들에 이메일로 보내기 시작했다.
“많은 사람이 아직도 직접 출판사를 방문해 원고를 보여주며 읍소해야 하는 줄 알고 있어요. 그럴 필요 없이 각 출판사 홈페이지의 투고란을 이용하면 됩니다. 이 과정마저 숫기가 없어 어렵다는 분들은 블로그 관리를 잘해놓으면 거꾸로 출판 기획자들이 연락할 수 있으니 정말 과거에 비하면 책 내기 쉬워졌지요.”
기획서를 보낸 출판사 4곳중 하나인 더난출판사에서 오케이 사인이 왔다. 이때부터 집필은 본궤도에 올랐다. 인세(권당 판매 금액 중 저자에게 돌아가는 몫)를 얼마나 받고, 언제 받는지를 정하는 계약서를 작성했다. 인세는 초보저자라 8%. 출판사로부터 러브콜을 받았다면 협상의 우위에 설 수 있어 높은 인세로 계약하는 것도 가능하다.
책을 준비하면서 ‘삽화와 사진 등 시각물은 어떻게 챙기지? 직접 그려야 하나?’는 의문이 들었지만 이 점은 의외로 쉽게 해결됐다. 실용서적의 경우 대부분의 출판사가 삽화와 시각물 제작을 전문가에게 따로 의뢰하므로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
남은 것은 거듭되는‘퇴고’의 번뇌 속으로 뛰어드는 일. 출판사와 계약 전 대략 맞춰?원고를 계속해서 고쳐 쓰는 작업이 필요한데 여기서 전문 출판편집자의 위력을 알게 됐단다. 글의 차례를 잡고 불필요한 글을 잘라내며 부족한 부분에 살을 붙이는 일을 편집자가 지휘하기 때문. 윤씨는 “책은 저자 혼자 만드는 게 아니라는 것을 알게되니 책 내기에 큰 용기가 생기더라”고 했다. 책의 제목과 표지는 ‘책의 얼굴’을 정하는 중요한 일인 만큼 자신의 의견을 제시하되 출판사의 뜻을 전적으로 받아들이는 선에서 마무리했다.
‘저술가’ 윤씨의 책은 17일 인쇄소에서 갓 구워내 따끈한 김이 모락모락 한 채 서점에 나왔다. 책이 얼마나 팔릴지는 생각하지 않는다. 20대의 마지막 한 해를 가장 뜻 깊은 일에 바쳤다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뿌듯하고, 지인들에게 책 자랑할 일에 입꼬리가 연신 귀에 걸린다. “아직 미혼이지만 결혼해서 첫 아이를 받은 아비의 기분이 이렇겠지 싶어요. 감사하고 또 대견하죠, 스스로가.”출판의 매력은 어쩌면 결과물 보다는 오랜 산고 끝에 얻는 자기긍정의 힘에 있는지도 모르겠다.
양홍주기자 yanghong@hk.co.kr
■ 출판사서 '러브콜'…"내 블로그에 꽂혔다나요"
바야흐로 웹 2.0 시대. 인터넷문명의 쓰나미는 출판문화를 어떻게 바꿔 놓았을까. ‘문청’들의 설렘이 담긴 원고 봉투를 뜯고, 글을 청탁하러 대학교수 연구실의 문을 두드리는 것은 옛일이 됐다. 두툼한 원고더미 대신 출판기획자의 책상을 차지한 것은 모니터와 마우스. 대박을 꿈꾸는 출판계 ‘선수’들은 오늘도 인터넷 블로그의 바다를 허우적대며 숨겨진 보물을 찾는다. 시덥잖은 잡담과 이모티콘, 악플이 물결치는 17인치 모니터 속에서 선수들의 눈길을 사로잡는 비법은 없을까?
“다르지 않아요. 클릭 수가 높으면, 나도 들어가 보고픈 마음이 생기죠.”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한기호 소장은 책을 내고 싶은 마음이 있다면 ‘알파 블로거’가 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기획 아이템이 잡히면 일단 포털 사이트에서 검색을 해봐요. 거기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 누구인지, 책으로 엮을 만한 전문성을 가진 사람이 누구인지 찾는 거죠. 아무래도 검색결과 창의 가장 윗자리부터 눈이 가지 않을까요.”
한 소장은 블로그에 글을 쓸 때 검색 엔진의 메커니즘을 잘 이용하라고 충고한다. “예컨대 신화에 관한 블로그를 운영한다고 봐요. ‘한국 신화’라는 키워드가 검색결과 윗부분에 걸릴 가능성이 얼마나 될까요. 하지만 ‘영화 <디워> 로 보는 한국의 이무기 신화’라는 표현을 쓰면 얘기가 달라져요. 측천무후 이야기를 쓸 때도 드라마 <대조영> 을 걸고 넘어지면 클릭 수가 확 오를 겁니다. 나쁘게 보면 ‘낚시질’이지만, 알파블로거가 되기 위한 전략적 방법이죠.” 대조영> 디워>
일단 네티즌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면 그 다음은 내용. 한 소장은 가장 중요한 것은 ‘원 테마’라고 강조한다. “하나의 주제를 깊이 있게 파고들어야 합니다. 어차피 모든 분야에 전문가일 수도 없고, 출판기획을 하는 사람들도 개론서를 내려고 블로그를 돌아다니지 않아요. ‘주식투자’보다는 ‘중국의 우량 조선주 투자’, 이런 식으로 파고들어야 합니다. 아무리 좁더라도 그 분야의 제일이 되는 것. 그것이 책을 낼 만한 블로거의 첫째 덕목이에요.”
‘파고들기’에 어느 정도 성공했다면, 이제 스토리텔링이 필요하다. “사례가 풍부한 스토리텔링이 생명입니다. 김영사에서 나온 <요리의 달인> 이라는 책을 예로 들죠. 저자인 5명의 블로거가 단순히 요리법만으로 스타가 됐을까요. ‘폼 나면서 쉽게 따라할 수 있는 럭셔리 파티요리’, ‘춘하추동 산해진미를 매년 보양식으로 챙겨 먹기’ 등 이야기를 재미나게 푸는 솜씨가 더 컸을 수도 있어요.” 마지막은 권위. “박형철씨가 <시골의사의 아름다운 여행> 을 출판할 수 있었던 것은 의사라는 직책이 주는 신뢰감 덕분이에요. 꼭 학위가 아니더라도 네티즌과 출판기획자에게 믿음 줄 수 있는 경력을 꾸준히 쌓아야 해요.” 시골의사의> 요리의>
웅진출판 이영미 주간은 블로그의 ‘메뉴’를 강조했다. “블로그를 일일이 뒤질 시간이 없을 때는 메인메뉴를 어떻게 분류했는지만 살펴보죠. 그러면 대충 책으로 엮을 만한 가능성이 있는지 없는지 보여요. 여행 마니아의 블로그라고 할 때, ‘국가별 정보’ ‘잡기장’ ‘사진첩’으로 분류해 놓은 것과 ‘풍경이 나를 사로잡았던 곳’ ‘음악과 함께 들르고 싶은 곳’ ‘자꾸 뒤를 돌아보게 만드는 곳’으로 메뉴를 구성해 놓은 것 중에 어디에 눈이 갈까요? 메뉴 자체만으로도 책의 챕터가 되는 블로거는 일단 ‘콜’을 받을 자격이 되는 거죠.”
유상호 기자 shy@hk.co.kr
■ 실용서 쓸땐 글솜씨보다 내용이 중요
한달에 책 한권 읽기도 힘든데 책을 쓴다니 가당찮은 소리라고요? 매일 수백 권의 신간이 쏟아지는 시대입니다. 태어날 때부터 ‘작가’가 있지 않은 이상, 의지와 일상의 경험만으로도 충분히 책을 낼 수 있습니다.
출판 기획자들은 어떤 주제가 단행본으로 나오기까지 최소 5개월~1년 정도가 걸린다고 말합니다. 책을 내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콘셉트’, 즉 구상이며 그것이 책이 사람들의 손 안에 머무는지 아니면 창고로 직행하는지를 결정한답니다.
글 솜씨의 중요도는 장르에 따라 다릅니다. 소설 등 문학작품은 문체와 줄거리, 재미의 삼박자가 고루 맞아야 하기 때문에 흡인력 있는 글 솜씨를 요구합니다. 반면 일반인이 자신의 전문성과 필요성을 바탕으로 쓰는 실용서나 소개서, 지침서 등은 글 솜씨보다 내용이 더 중요하지요. 소재가 최근의 트렌드에 맞는지, 또 얼마나 많은 정보를 담고 있는지에 따라 책의 출판 여부가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한 출판기획자는 “주식과 관련한 책을 낸다면 그 분야에서 10년 이상 일을 한 사람이어야 전문성이 있다고 간주된다”며 “실용서 등은 저자의 업무전문성이 책의 전문성으로 연결되길 바라는 것이므로 글 솜씨는 큰 고려 대상이 아니다”고 말합니다. 전문성과 기획력으로 승부하라는 이야기지요.
무엇보다 책을 내기위해 가장 선행해야 할 것은 다독입니다. <30대 나의 가치를 키워줄 귀중한 만남 50> 등 많은 책을 쓴 일본작가 나카타니 아키히로 씨는 지난 달 한국을 방문했을 때 “대학 시절 4,000권의 책을 읽었더니 이제는 일주일에 한 권을 쓸 수 있다”고 했습니다. ‘책 속에 길이 있다’는 경구는 책 쓰기에도 예외가 아닌 셈입니다.
이대혁기자
■ "책을 내면 인생이 180도 달라져요"
지금은 유명인사가 된 한비야(49ㆍ월드비전 긴급구호팀장)씨는 어느날 사석에서 이렇게 털어놓았다.
“처음 <바람의 딸 지구 걸어서 세바퀴 반> 을 출간하고 나자 갑자기 주변의 대우가 달라졌다. 신문에서 인터뷰를 하고 방송사에서 출연요청이 들어오고, 삶 자체가 한 단계가 도약한 느낌이랄까. ‘저자’가 된다는 것이 엄청난 힘을 갖는구나 싶었다.” 바람의>
필명이든 본명이든 자기 이름으로 된 책을 낸 사람들은 한결같이 “인생이 180도 달라진다”고 말한다. 베스트셀러가 된 경우 부와 명예가 한꺼번에 들어오는 것은 기본이고 소소하게 팔리는 실용서적이라도 책을 냈다는 사실 자체가 자기분야에 대한 전문성을 인정받는 계기로 작용한다.
기업체 임원으로 근무하면서 2005년 남성을 위한 자기계발서 <마흔으로 산다는 것> 을 펴낸 전경일씨는 현재 기업체들이 다투어 찾는 유력 초청강사로 이름을 날리고 있다. 사오정 시대 직장남성의 고민을 절묘하게 파고든 책은 지금까지 10만부 이상 팔렸다. 한 출판사 관계자는 “10만부 이상 팔리는 베스트셀러 작가는 전국적으로 유명인사가 된다”고 귀띔한다. 마흔으로>
전씨 외에도 많은 사람들이 부동산, 증권, 재무, 투자 등 많은 영역에서 책을 낸 후 강사로서 활약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책 출간은 곧 ‘전문가’의 타이틀이 붙어 사회적 인지도를 높이는 수단이 된다.
시장 반응이 괜찮다면 ‘수입’도 퍽 짭짤하다. 다산북스 출판기획 최소영 팀장은 출판사마다 적용하는 비율이 다르다는 것을 전제로 “인세는 보통 처음 8%로 시작해 2만~3만부면 10%, 그 이상 팔리면 더 높은 비율을 적용한다”며 “책 가격 1만원을 기준으로 1년에 5만권이 팔린다면 평균 9%만 적용해도 4,500만원의 부수입이 발생한다”고 말했다. 웬만한 기업 과장급 1년 연봉이 부럽지않은 수치다.
무엇보다 출판은 다람쥐 쳇바퀴처럼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자칫 잃기 쉬운 자긍심과 성취감을 새롭게 얻는 기회이다. 기획과 글쓰기, 마무리까지 최소 1년의 세월이 투자되는 만큼 출판된 책을 보면 마치 자식을 얻은 것과 같은 기분. 여기에 저자가 됐다는 뿌듯함과 작품에 따라 ‘소설가’, ‘시인’, ‘집필가’라는 남다른 타이틀을 얻는 기쁨도 있다. 우연한 기회에 무료신문에 매주 연재하게 된 글들을 올 초 <김대리의 직딩일기> 라는 책으로 엮은 작가 김준(필명)씨는 “대학 다닐 때의 꿈은 기자나 작가였는데 이루지 못했다”면서 “회사에서 하지 못한 말을 글로써 ‘배설’하는 것은 물론 예전에 하고 싶었던 일을 하는 ‘대리만족’의 기쁨도 녹녹치 않다”고 말했다. 김대리의>
이대혁 기자 selected@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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