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메니에르 증후군’이란 생소한 병명이 갑자기 인터넷 포털 사이트 검색어 상위에 랭크됐다. 한 여배우가 심한 어지럼증과 함께 한쪽 귀가 막힌 듯한 느낌이 들고 이명(귓속 울림)과 난청 증상이 나타내는 이 질환으로 고통받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졌기 때문이다.
어지럼증은 두통이나 소화불량 등과 함께 가장 흔히 겪는 신체 이상 증상의 하나이다. 하지만 증상만으로는 그 원인을 알아내기 힘들다. 원인이 매우 다양하기 때문이다. 중추나 말초 전정기관(평형감각을 담당하는 귓속의 달팽이관 바깥부분) 이상, 혈압 문제로 어지럼증이 생기기도 하고, 아무런 이유 없이 발생하기도 한다.
어지럼증은 일반적으로 ‘현훈(眩暈)’이라는 회전성 어지럼증과 비회전성 어지럼증으로 나뉜다. 회전성은 주위가 빙글빙글 도는 느낌이 들고 비틀거리며 구토를 동반하기도 한다. 반면 비회전성은 눈앞이 캄캄해지면서 붕 떠 있는 느낌이 든다.
■ 말초성 혹은 귀 질환 - 바이러스성, 신경계 이상이 원인
가장 흔한 어지럼증은 ‘양성 돌발성 체위변화성 어지럼증’이다. 귓속의 평형 유지기관인 세반고리관 내에 이석(작은 돌가루)이 제자리에서 떨어져 나와 떠다니면서 전정기관을 자극하면서 어지러운 증세가 생기는 것을 가리킨다.
잠자리에서 돌아누울 때, 누웠다 일어날 때, 앉은 상태에서 누울 때에 어지러운 증상이 처음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또한 선반에서 물건을 꺼내려고 올려다볼 때, 머리를 감을 때, 급히 머리나 몸을 돌릴 때 비슷한 증세를 느낀다. 어지럼증은 보통 아침에 더 심하고 활동한 뒤인 오후에는 약해지는 것이 보통이다. 보통 빙빙 도는 듯한 느낌의 어지럼증은 30초 이내에 없어진다. 그 뒤에 빙빙 도는 증상이 아닌 불분명한 어지러운 느낌이 몇 시간에서 하루종일 지속될 수도 있다.
양성 돌발성 체위변화성 어지럼증은 세반고리반 내의 이석을 세반고리관에서 빼내는 자세 요법으로 증세를 치료할 수 있다.
두번째로 흔한 어지럼증은 ‘전정 신경염’으로, 귓속의 평형신경에 바이러스가 침입해 신경이 마비되면서 발생한다. 전정 신경염에 걸리면 갑자기 매우 심하게 빙빙 도는 듯한 어지럼증을 느끼고 구토, 울렁증, 식은땀, 안진(眼震ㆍ눈떨림) 등이 유발된다. 감기를 심하게 앓은 뒤에 발생하기 쉬우며, 대개 1~2주 안에 호전된다. 주로 30~40대에 발병하며, 기온 변화가 심한 환절기에 많이 발생한다.
메니에르 증후군에 걸려도 어지럼증이 나타난다. 이 병은 내이(內耳)의 달팽이관과 세반고리관의 내림프액 압력이 크게 증가해 어지럼증, 난청, 이명 등을 일으킨다. 이 경우 한번 어지럼증이 발생하면 최소한 30분에서 몇시간씩 증상이 지속된다.
메니에르 증후군은 내분비ㆍ자율신경계의 혈관 운동성에 이상이 생겼거나 유전적 요소와 관계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질환에는 소금을 적게 먹는 저염식이 권장되고 있으며 커피와 차, 담배, 술, 초콜릿 등을 피하는 것이 좋다.
■ 중추성 질환 - 뇌종양, 뇌 혈액순환장애가 원인
장년층 이상의 고령자들에게 나타나는 어지럼증은 주로 뇌종양, 뇌 혈액순환 장애 등 중추성 질환으로 인해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고령자들이 갑자기 심한 두통과 함께 어지럽고 팔다리에 힘이 빠지고 마비되면 지체없이 병원을 찾는 게 좋다.
뇌종양일 경우에는 종양이 몸의 운동기능을 좌우하는 부위에 영향을 주어 두통과 함께 어지러운 증상이 나타난다. 뇌혈관기형(모야모야병, 동정맥기형)도 어지럼증을 유발할 수 있다.
이런 증상이 나타나면 뇌 컴퓨터단층촬영(CT)이나 자기공명영상(MRI) 등 정밀검사를 받아보도록 한다. 국내 연구 결과, 어지럼증 환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MRI 검사에서 33.7%가 뇌경색 증상을 보였고 동맥경화 3.3%, 기타 혈관기형 및 뇌종양도 4.1%나 됐다.
■ 심장 질환 - 고혈압ㆍ저혈압이 원인
학교 조회 시간에 어지러워서 쓰러지는 학생들이 있다. 일시적으로 피가 다리에 몰리면서 생기는 기립성 저혈압에 따른 것이다. 뇌는 심장에서 나오는 혈액의 20% 이상을 필요로 하는데, 충분한 양의 혈액을 공급받지 못하면 일시적으로 기능장애가 생기면서 어지러울 수 있다.
최고혈압이 평균 100㎜Hg 이하인 저혈압은 만성적으로 어지럼증이 나타날 수 있으므로 약물치료를 꾸준히 하고 생활습관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
■ 심인성 어지럼증 - 우울, 불안, 불면 증상 동반
신체 이상이 아닌 정신적인 문제로 어지럼증이 발생하기도 하는데 이를 심인성(心因性) 어지럼증이라고 한다. 대개 어지럼증 환자 20~50%가 심인성 어지럼증 환자이다. 심인성 어지럼증 환자는 ‘머리 속이 도는 듯하다’ ‘머리가 멍하다’ ‘아찔하거나 쓰러질 것 같다’는 등의 막연한 증상을 호소한다.
원인은 불안장애, 우울증, 신체형 장애, 히스테리아, 뇌진탕 후 증후군 등이 있다. 이 경우에는 정신과를 찾아 치료를 받아야 하지만, 우선 전정기능 강화 훈련만으로도 효과를 볼 수 있다.
■ 치료와 관리는
어지럼증이 심하면 일단 머리를 움직이지 말고 누워서 휴식을 취하는 것이 가장 좋다. 증상 완화를 위한 약물치료를 병행하고 급성기가 경과하면 전정재활운동을 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전정재활운동은 환자가 급성기로부터 벗어난 뒤 장기적으로 전정기능을 회복ㆍ강화하는 치료다. 전정재활운동은 일시적으로는 어지럼증을 악화시킬 수도 있지만, 장기적인 전정기능 회복을 위해 필요한 치료다. 전정재활운동 중에는 약물치료는 가능한 하지 말아야 한다.
생활 속에서 느끼는 어지럼증은 그 원인도 다양할 뿐 아니라 각 개인이 호소하는 양상도 다양해 의사들도 진단하기가 쉽지 않은 실정이다. 따라서 어지럼증이 일시적이 아니고 반복적이고 장기적으로 나타나면 환자 스스로 증상이 나타나는 시간대와 횟수, 정도를 기록했다가 병원을 찾아 의사에게 알려줄 필요가 있다.
간혹 어지럼증이 생겨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넘기는 사람들이 있는데, 경우에 따라서는 응급질환으로 인한 것일 수도 있으므로 자가 진단은 금물이다. 만일 정확한 감별 진단이 어렵거나 중추성 질환에 의한 어지럼증이 의심되면 전문의로부터 정밀검사를 받아보는 것이 바람직하다.
<도움말 주신 분="세브란스병원" 이비인후과 이원상 교수, 서울아산병원 정종우 한림대의료원 강남성심병원 신경과 황성희 교수>도움말>
최종욱기자 juchoi@hk.co.kr
권대익기자 dkw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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