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9년 독일계 유태인 마르쿠스 골드만과 그의 사위 샘 삭스가 뉴욕 맨해튼에 조그마한 약속어음거래 회사를 차렸다. 이름은‘골드만 삭스’.
137년이 지난 지난해 골드만 삭스가 벌어들인 당기 순이익은 95억 4,000만 달러(약 9조5,000억원)였다. 삼성전자의 지난해 총 순이익(7조원 가량)보다도 훨씬 많은 금액이다. 2004년, 2005년 각각 45억달러, 56억달러 였던 순이익은 거침없이 늘고 있다.
골드만 삭스 뿐 아니라 세계적인 투자은행(IB)들은 굴뚝없는, 고부가가치형 금융시장에서 엄청난 수익을 남기고 있다. 예금보험공사의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메릴린치의 순이익은 75억 달러, 모건 스탠리는 74억 달러를 기록했다.
리먼 브라더스, 베어 스턴스까지 포함한 전세계 5개 투자은행들의 지난해 순이익 평균은 61억 달러 가량이었다. 매년 순이익 증가폭도 가파르다. 이쯤 되면 제조업에 기대어 어렵게 돈을 버는 국가들은 좌절감을 느낄 만 하다.
비슷한 것처럼 보여도 이들 세계 굴지의 투자은행들은 각자의 특색을 갖추고 있다. 골드만삭스는 소매업의 비중이 낮고, 기관투자자를 위한 서비스와 기업 인수합병(M&A), 자기매매 등을 통해 주요 수익을 창출하고 있다.
한마디로 손이 크고 굵직한 거래와 투자로 큰 돈을 번다는 뜻. 골드만 삭스의 경우 지난해 중국 공상은행(ICBC) 및 일본 스미토모미쓰이 금융그룹(SMFG) 지분 투자로 큰 수익을 남기기도 했다.
메릴린치가 중점을 두는 분야는 골드만 삭스와는 다르다. 메릴린치는 전국적인 지점망을 통해 부유층 고객 자산관리 사업을 위주로 돈을 벌어들인다.
77년 증권계좌, 일반계좌, 신용카드계좌 등을 통합 종합자산관리계좌(CMA)를 도입하며 크게 성장했다. 전체 업무 중에 고객 자산관리가 47%를 차지하지만 투자은행 업무에서도 골고루 수익을 창출하고 있다.
기업은행의 시장분석에 따르면 국내 증권사의 경우 도매 영업력이나 자본력이 취약해 단기간내 골드만 삭스형 투자은행으로 변신하기에는 어려워, 정부의 기대와는 다르게 골드만 삭스형 보다는 메릴린치형 투자은행의 등장 가능성이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최근에는 상업은행에서 출발한 금융회사들이 큰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국내에서도 적극적인 공세를 펼치고 있는 씨티그룹과 HSBC가 전세계 금융회사를 적극적으로 M&A하며 대형화ㆍ국제화에 성공했다.
전세계에서 인재들도 이들 투자은행에 몰려들고 있다. 골드만 삭스의 지난해 1인당 연봉은 62만2,000달러(약 5억7,000만원)였다. 굴지의 경영대학원을 졸업한 뒤 20~30명의 임직원과 상대하는 치밀한 인터뷰를 거쳐 선발된 인재들이다.
한번 세계적인 투자은행에 발을 들여놓은 인재들은 민간기업을 너머 백악관이나 세계은행 등 정책을 주도하는 핵심 당국자로 변모하는 경우가 많다.
헨리 폴슨 미 재무장관, 로버트 루빈 전 재무장관, 로버트 졸릭 세계은행 총재 등은 골드만 삭스 출신들로 이들은 월가를 너머 세계 금융시장에 막강한 영향력을 갖고 있다.
반면 한국의 금융회사들은 세계 시장에서 명함조차 내밀지 못할 정도로 미약하다. 우리나라 은행들의 해외 점포수는 총113개에 불과하다. 반면 미국 씨티은행 한 개 은행의 지점만 9,000개에 이른다.
씨티은행의 해외 점포만 하더라도 우리나라 전체은행의 79.6배다. 전체 순익에서 해외사업이 차지하는 비중도 국내은행이 평균 3%에 불과하지만, 영국의 스탠다드 차터드는 92%, HSBC는 80%, 시티은행은 33%로 현격한 차이가 난다.
해외 네트워크 구축 미흡, 전문인력 태부족, 리스크 관리 취약 등으로 한국의 금융회사들은 세계시장의 돈줄에서 소외돼 ‘안방금융회사’로 쪼그라든 것이다.
자본시장통합법 시행을 앞두고 국내 은행 증권사 등이 글로벌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선 정부의 실질적이고 세밀한 장벽허물기와 함께, 세계적 투자은행들을 벤치마킹해 자기 것으로 만드려는 국내 금융회사들의 피나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
이진희 기자 rive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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