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화(菊花)의 장막’에 가려진 일본 황실의 어두운 이면을 담은 책 ‘프린세스 마사코-일본 황실의 수인’(사진) 일본판이 다음달 일본에서 출판된다.
‘황실 모독’이라는 사회적 압력 때문에 고단샤(講談社)가 출판을 포기했던 이 책은 급진 좌익조직인 적군파 출신 사장이 운영하는 다이산쇼칸(第三書館)에서 출간될 예정이어서 파문이 확산되고 있다.
일본특파원을 지낸 호주 언론인 벤 힐즈(사진)가 쓴 이 책은 ‘감옥 같은’ 황실 생활에 스트레스를 받아 ‘적응장애’라는 신경성 질병에 걸린 황태자비 마사코(雅子)의 일상을 추적한 논픽션이다. 황실의 비인간적인 출산 압력에서부터 가식적인 천황제의 실태에 이르기까지 황실을 매우 부정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지난해 호주 등에서 이 책이 발간되자 일본 정부는 “내용이 대부분 날조됐다”며 저자에게 사과와 내용 수정을 요구하는 등 강력하게 반발했다.
주요 언론들도 책의 광고 게재를 거부하는 등 일본 사회는 총체적으로 이 책을 성토하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저자는 표현의 자유 등을 들어 사과를 거부했다. 오히려 이 같은 논란에 힘입어 책은 베스트셀러가 됐다.
보수ㆍ우익 진영은 일본판 출판이 다시 강행되고, 그것도 좌익계 출판사에서 나온다는 사실에 매우 흥분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좌익의 황실 해체 공작”이라고 주장하며 적극적 대응을 촉구하고 있다.
저자는 익명의 이메일을 통해 살해위협까지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적군파 멤버였던 기타가와 아키라(北川明) 사장의 다이산쇼칸은 사민당의 쓰지모토 기요시(辻元淸美) 중의원 의원도 한때 사장을 맡았던 진보계열의 출판사이다.
일본 황실에 정통한 언론인들에 따르면 이 책의 내용은 세부적으로 오류가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일본 정부 등이 직ㆍ간접적으로 나서 책의 출판 자체를 막는 것은 지나치다는 지적도 있다.
일본 사회의 과도한 반응은 천황을 비판해서는 안된다는 금기 때문인데, 일본에서는 이를 황실 문장(紋章)인 국화의 이름을 따 ‘기쿠(菊) 터부’라고 부른다.
도쿄=김철훈 특파원 ch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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