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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선거 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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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선거 천재'

입력
2007.08.23 0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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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시 미국 대통령의 오랜 책사(策士)인 칼 로브 비서실 부실장이 지난 주 부시 곁을 떠난다고 발표, 국제적 뉴스가 됐다. 유럽 언론까지 분석과 논평을 쏟아냈다. 로브가 체니 부통령에 이어 권력서열 3번째로 꼽힐 정도로 국정 전반에 영향력을 행사한 데 따른 것이다. 그 핵심은 무엇보다 선거참모 역할이다. 대통령 아들이란 자산 밖에 남다른 자질이 없는 부시가 재선 대통령 반열에 오르기까지 숱한 선거전을 승리로 이끈 로브는 미국 정치사상 가장 뛰어난 선거 전략가로 통했다.

■로브는 1970년 19살 때 공화당 자원봉사자로 일하면서 ‘선거 천재’를 과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당 캠프의 편지지를 훔쳐내 후원모임에 노숙자와 알코올중독자 무리를 초청, 난장판을 만드는 장난을 친 것이다. 이후 선거 때마다 민주당 후보들이 루머와 의혹에 시달린 배후에 그의 보이지 않는 수작이 있었다. 부시가 정치에 도전한 1994년 텍사스 주지사 선거 때 민주당 주지사 앤 리처즈는 레즈비언 의혹에 시달렸다. 로브가 전화 여론조사를 빙자, “리처즈 캠프가 레즈비언 일색인 사실을 알면 지지하겠는가?”라고 묻는 네거티브 캠페인을 꾸민 것이다.

■2000년 공화당 대선후보 경선에서는 존 맥케인 상원의원이 당했다. 베트남전 참전과 리더십을 뽐내며 선두를 달리던 맥케인에게 혼외 흑인자녀가 있다는 난데없는 의혹이 떠돌면서 판세가 뒤집혔다. 2004년 대선 때도 베트남전 영웅으로 방위군 출신 부시를 주눅들게 한 존 케리 민주당 후보가 근거 없는 전공(戰功)조작 의혹에 휘말렸다. ‘진실을 위한 고속정 참전용사’란 유령단체가 해군 고속정 정장으로 활약한 케리의 전공이 거짓이라는 비난광고를 퍼붓는 바람에 맥없이 무너진 것이다.

■로브가 선거 모사꾼 노릇만 한 것은 아니다. 그는 보수주의 이념과 일방주의 정책을 앞세워 여론을 설득하는 데 탁월했다. 그러나 사회분열을 조장하고 반대세력을 악으로 매도하기를 일삼았다. 이를 통해 한때 부시가 칭송했듯 ‘승리의 설계자’로 행세했으나, 도덕적 도그마와 일방주의 정책이 파탄 나면서 주군에 앞서 퇴장하기에 이른 것이다. 그 뒤로 “법치와 민주주의를 치장으로 여긴 충복일 뿐”이라는 냉소와 “로브 신화는 보수주의의 성공 아닌 치욕의 기록”이라는 반성이 이어진다. 대선 국면의 우리 정치 지도자들도 주변의 ‘선거 천재’들을 잘 살펴볼 일이다. 실패한 지도자에게는 더욱 긴요하다.

강병태 논설위원 btk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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