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크스주의는 경제결정론이다. 한 정치사상가는 마르크스주의의 알맹이를 이렇게 설명한다.
"인간은 노동을 통해 삶을 영위하는데 이 때 노동의 성격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이미 원시시대의 노동, 봉건제의 노동, 자본주의의 노동 등 형태로 정해져 있다.
이처럼 물질적 생산력의 발달에 따라 특정한 단계에 상응하는 생산관계가 생겨나며, 이런 생산관계의 총합이 사회의 경제 구조를 구성하게 된다. 그리고 이 같은 경제적 기초(하부구조)에 상응하는 정치 법률 사상 종교(상부구조)가 만들어지게 된다. 결국 하부구조가 상부구조를 결정한다."
1980년대 많은 운동권 학생들은 경제가 사회의 다른 영역을 규정한다는 단순 명료한 칼 마르크스의 논리에 열광하면서 공산주의 세상을 꿈꿨다. 물론 지금까지 이 사상에 집착하는 386세대는 거의 없지만 아직도 경제를 사회의 가장 중요한 요소로 보는 버릇은 남아 있다.
386세대 운동권들에게 강한 영향을 받은 노무현 대통령도 경제결정론적 사고에 곧잘 빠져 들곤 한다. 노 대통령은 14일 국무회의에서 남북정상회담과 관련, "남북 경제공동체를 형성하는 것이 한반도 평화에 가장 중요한 일이기에 이를 위해 노력할 것"이라며 "북핵 문제 해결 등을 놓치진 않겠지만 경제에서의 상호의존 관계는 평화 보장의 가장 중요한 문제"라고 역설했다.
남북 경제 협력이 활성화하면 북핵 문제 등 정치 문제도 잘 풀릴 것이라는 얘기다. 경제가 정치를 규정한다는 전형적인 경제결정론이다.
경제결정론은 노 대통령까지 매료시켰지만 이를 비판한 학자도 몇 트럭은 된다. 이 가운데 노 대통령의 경제결정론에 대한 '맞춤 공격수'가 될 만한 사람을 고르라면 역시 하버드대 역사학과의 니알 퍼거슨 교수다. 그의 <현금의 지배(the cash nexus)> 라는 책으로 가 보자. 현금의>
"돈은 세계가 돌아가도록 만들지 못한다. 오히려 경제 생활을 구축한 것은 정치적 사건이었다. 그 중에서도 전쟁이었다. 권력 폭력 성(性) 등은 돈을 압도할 수 있다." 정치와 전쟁이 경제에 작용한다는 그의 논리는 얼마나 명쾌한가.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는 북한에게 엄청난 경제 지원을 했다. 노 대통령의 시각인 경제결정론으로 보면 경제 지원을 했으니 북한은 정치적으로 평화적 태도를 보여야 했다. 하지만 북한은 2006년 10월 9일 핵실험으로 답했다.
북한은 경제가 정치를 규정하지 않고 오히려 반대 측면이 강하다는 점에서 가장 '비 마르크스주의적'인 나라인 동시에 가장 '퍼거슨적'인 나라다.
노 대통령은 이처럼 핵실험으로 북한에 속은 전력이 있는데도 14일 국무회의에서 밝혔듯 이번 정상회담에서 경제공동체 기반 구축에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정상회담이 10월로 연기됐지만 청와대는 "성격과 의미에서 달라질 것은 없다"며 이 같은 기조를 유지할 방침임을 시사했다. 아직도 '돈을 주면 북한이 정치적 선의를 보일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북한이 이런 경제결정론적 기대에 부응하지 않고 지난 번 핵실험과 같은 도발을 또 다시 하지 않을지 걱정된다. 북핵 문제를 진전시키지 않고 경제공동체 운운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야당의 지적이 설득력을 갖는 것은 이 때문이다.
참고로 13, 14일 한국일보 여론조사에 따르면 정상회담 의제로 가장 많은 34.1%가 북핵 폐기를 꼽았다.
이은호 정치부 차장 leeeun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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