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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백의종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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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백의종군

입력
2007.08.22 0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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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근소한 차이로 패한 박근혜 전 대표가 "백의종군(白衣從軍)하겠다"고 다짐했다. 이미 며칠 전 박 캠프의 중요 인사가 TV인터뷰에서 "(그럴 리 없지만 만약 진다면)백의종군한다고 말할 것"이라고 밝힌 적이 있지만, 막상 전당대회의 클라이막스에서 나온 그의 선언은 경선 대장정을 성공으로 마무리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그러나 '당신은 진정한 승리자'라고 대서특필됐지만 패배는 역시 패배다. '정권교체를 위한 밀알'에서 '상대방에 대한 백지어음'까지 백의종군의 의미에 대한 추측이 분분하다.

■이 말이 처음 문서에 기록된 것은 1451년.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세종 말기 수양대군과 안평대군이 각축하던 시절 양측은 각각 한명회와 이한로라는 책사를 두었는데, 문종 즉위 후 수양이 득세하자 이한로는 평안도로 유배 비슷하게 쫓겨갔다.

그 때 지금의 부지사 격인 김종서가 "이곳엔 백의를 입고 종군하는 자가 몇 명 있는데 재주가 아까우니 그렇게 쓰면 어떻겠느냐"고 상소했고, 이한로는 관복을 입지 못한 채 김종서를 도왔다. 1599년 연산군 시절에도 정치적으로 패배한 '인재'를 변호하며 "백의종군이란 것이 예로부터 있었다"고 읍소하는 기록들이 있다.

■지금 의미의 '백의종군'은 그로부터 100여 년이 지난 후 임진왜란에서 이순신과 관련한 내용이다. 조정에서 심각한 논쟁까지 벌였던 충무공의 백의종군에 대해 '장수가 병졸로 계급이 강등되는 치욕적 형벌'이라는 견해와 '장수의 신분을 유지하는 일종의 보직 해임'이라는 견해가 여전히 논란거리다.

충무공의 경우 스스로 '강등'의 처신을 선택했지만(난중일기), 당시의 전투상황 기록을 보면 '보직해임' 쪽이 설득력이 높다. 충무공은 '백의'를 입었으나 육지와 바다의 전투에서 원균과 동급 장수인 화열장(火烈將)이나 원장(援將)으로 활약했다.

■백의종군이란 스스로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혹은 상대방)의 명령과 처분에서 출발해온 것이 원래의 의미다. 줄기세포 사건 이후 황우석씨가 그 말을 했을 때 그것은 과학계로부터 받은 '강등' 처분을 인정한다는 의미였다.

노무현 대통령이 지난해 "퇴임 후 백의종군"을 밝혔을 땐 정치적 빚의 내용을 국민이 결정하라는 '백지어음'에 이서했다는 각오였을 것이다.

박 전 대표의 약속과 다짐은 어떻게 전개될까. 그것은 상당 부분 이명박 후보측의 태도에 달려 있다. 1.5%P의 승리가 주는 교훈은 상대의 백의종군 정신을 충분히 헤아리는 것이 아닐까.

정병진 논설위원 bjj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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