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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현의 영화로 보는 세상] 3, 4위를 기억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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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현의 영화로 보는 세상] 3, 4위를 기억하라

입력
2007.08.22 0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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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위와 엄청난 차이가 난다. 제작비, 화제성, 스크린수, 관객동원 등 모든 면에서. <디워> 와 <화려한 휴가> 의 ‘빅2’가 비평논란과 사회적 이슈, 엄청난 마케팅을 무기로 극장가를 휩쓸고 있는 이때 누가 3, 4위의 존재를 기억이나 할까.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다. 언제부턴가 한국영화도 1, 2등만 기억하려 할 뿐, 그 다음에는 관심이 없다. 관객 1,000만명 시대가 그렇게 만든 것일까. 아니면 1과 2로만 구성되는 디지털시대에 걸 맞는, 올림픽에서 동메달을 따고도 시큰둥해 하는 우리사회 일등주의를 한국영화도 고스란히 본받은 것일까.

“나도 여기 있다” “나도 이만하면 잘하는 것 아니냐”는 그들의 외침이 외롭다. 하긴 아직도 하루 40, 50만명이 몰려들며 연일 ‘700만명’ ‘600만명’ 기록을 갈아치우는 1, 2위에 온통 눈과 귀가 쏠려있는 마당에 “하루 14만명”이란 소리가 귀에 들어오기나 할까.

15일 개봉한 <만남의 광장> <지금 사랑하는 사람과 살고 있습니까> 가 그렇고, 그 한 주 전에 개봉한 <리턴> <기담> 이 그렇다. 지난 주말 박스오피스 3위인 <만남의 광장> (사진)은 개봉 5일만에 70만명의 관객을 모아 나름대로 ‘흥행몰이’에 성공하고 있고, 4위인 <지금 사랑하는…> 도 50만명을 기록했는데도 말이다.

혹자는 이렇게 말할지 모른다. ‘그게 어디 영화가 좋아서, 그 영화가 정말 보고 싶어서 간 숫자냐. 1, 2위 하는 영화가 매진돼서 아니면 이미 그것들을 본 관객들이 마땅히 볼 게 없어 할 수 없이 들어간 것이 아니냐’고. 흔히 말하는 ‘주워 먹기’란 얘긴데, 이는 <디워> 를 애국심 하나로 700만명이나 봤다고 우기는 것만큼이나 어리석다. 영화관람이 많은 시간과 돈을 투자하는 고비용상품이란 점, 수준 높고 냉정한 한국관객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이런 사실은 이 영화들에 대한 관객들의 평가가 증명해 주고 있다. <웰컴투 동막골> 과 비슷한 분위기의 <만남의 광장> 에는 코믹유머가 자연스럽게 살아있고, <지금 사랑하는…> 는 섹슈얼한 연애 드라마가 올 여름 내내 이어진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에 지친 여성들에게 색다른 맛을 주며, <기담> 에는 새로운 감각의 몽환적 영상공포가, <리턴> 은 탄탄한 이야기가 분명 흥행의 요소로 자리잡고 있다.

만에 하나 혹자의 말이 맞다면 정말 큰일이다. 제작에서도, 상영에서도 한국영화의 다양성은 요원하며, 한국영화산업 미래 역시 캄캄하기 때문이다. 극장은 점점 더 1, 2위에게만 자리를 넓게 펴줄 것이고, 제작사들은 큰 건 하나로 승부를 걸려고만 할 것이다. 그래서 <화려한 휴가> 의 제작사인 기회시대 유인택 대표조차도 “큰 영화의 이 같은 흥행이 작은 영화의 존재와 가치를 무시할까 걱정된다”고 말하지 않았는가.

사실 위기에 빠진 한국영화산업의 부흥을 말하면서 오랜만에 찾아온 ‘빅2’인 <디 워> 와 <화려한 휴가> 가 그 역할을 해주리라고 전망하는 영화인은 아무도 없다.

그들은 한결같이 그보다는 작지만 속이 꽉 찬 30, 40억원 짜리 영화들에서 그 길을 찾고 있다. 그들이 꾸준히 150만에서 200만명의 관객을 모을 때 한국영화는 저력과 다양성을 얻을 것이라며 거품빼기, 속 채우기에 열중하고 있다.

이번 주에도 <사랑방 선수와 어머니> 를 비롯, 새로운 한국영화들이 <디워> 와 <화려한 휴가> 의 막판 흥행몰이 속에서 개봉한다. ‘빅2’에 비해 이들의 목표는 ‘3, 4위에 손익분기점을 넘어 조금의 수익을 남기는 150만명’으로 소박할지 모른다.

1, 2등이라고 결코 이를 무시하지 말자. 그 속에 한국영화의 새로움과 가능성, 꿈이 존재하고 있기에. 비단 영화 뿐이겠는가. 정치, 막 대선후보 경쟁을 끝낸 한나라당이라고 다를 게 있을까.

문화대기자 leed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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