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오후 4시20분 서울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 장내를 가득 메운 1만5,000여명의 한나라당 당원 대의원들의 귀가 박관용 당 선관위원장에게 쏠렸다. 이어 박 위원장의 쩌렁쩌렁한 음성이 울렸다. "이명박 후보가 최다 득표로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로 선출됐음을 선포합니다."
희비가 교차하는 순간이었다. 이 후보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일제히 환호성을 질렀고 박근혜 전 대표 지지자들에게서는 긴 탄성이 흘러나왔다. 일부 이 후보 지지자들은 감격의 눈물을, 박 전 대표 지지자들은 통한의 눈물을 흘렸다.
이 후보는 대선후보 수락 연설에서 "감사하다"는 말을 연발하며 박 전 대표에게 협조를 구했다. 그러나 패자인 박 전 대표에게 더 큰 박수가 쏟아졌다. 박 전 대표는 담담한 목소리로 "경선 결과에 깨끗하게 승복한다"고 밝혔다. 박 전 대표가 "지지자들도 나와 함께 당의 화합을 위해 노력하고, 열정을 다시 정권 교체에 쏟아 주기 바란다"고 말하는 순간, 1만5,000여명의 청중은 일제히 일어나 "박근혜"를 연호했다.
이에 앞서 낮 12시 15분부터 시작된 개표는 손에 땀을 쥐게 하는 한편의 드라마였다. 이 후보가 여유 있게 승리를 거둘 것이라는 예상은 일찌감치 빗나갔다. 개표 초반 박 전 대표가 앞섰다는 소식이 개표 참관인 등을 통해 전해지면서 장내가 술렁였다.
전체 투표 13만893표 중 4만3,000여표가 개표된 상황에서 박 전 대표가 2,000여표를 앞선다는 소식이 전해진 것. 대구ㆍ경북 지역 개표가 집중적으로 이뤄진 탓이었다. 장내에선 박 전 대표가 5,000표 앞서고 있다는 이야기까지 나돌았다. 박 전 대표 측 인사들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고, 이 후보 진영에선 낭패감이 역력했다.
이 후보의 우세지역인 부산, 경기지역에서 엎치락뒤치락하는 상황이 이어졌고, 이 후보의 압도적 우위가 예상된 서울에서마저 큰 격차가 벌어지지 않으면서 '대역전 드라마'가 연출되는 것이 아니냐는 분위기가 흘렀다. 그러나 투표가 마무리 될 무렵,"선거인단에서 이 후보가 졌지만 여론조사 격차를 뒤집지 못한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이 후보 측 인사들은 비로소 안도의 큰 한숨을 내쉬었다.
특히 개표 막판 서울 지역 투표함이 4개 남은 것으로 확인되고, 이 후보 캠프 좌장인 이재오 최고위원의 지역구인 은평 지역의 투표함이 마지막으로 개봉될 것으로 전해지면서 박 전 대표측 인사들의 얼굴에선 핏기가 사라졌다. 결국 결과는 2,452표차의 박빙 승부였다. 이 후보 측 한 인사는 "박 전 대표가 정말 무섭게 따라왔다"고 혀를 내둘렀다.
일부 박 전 대표 지지자들은 전당대회가 끝난 뒤에도 행사장에 남아 "경선 원천 무효"를 외쳤다. 경선룰 협상의 이 후보 대리인이었던 박형준 대변인은 승용차편으로 행사장을 나오다 흥분한 박 전 대표 지지자들에 붙잡혀 멱살잡이를 당하는 등 곤욕을 치렀다.
김지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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