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과 예술의 대립은 비교적 새로운 현상이다. 과거에는 대중이 예술에 접근할 기회가 아예 없었기 때문이다. 17세기 이전만 해도 예술품은 왕이나 귀족의 개인적 소장품으로, 오직 선택 받은 사람들만 볼 수 있었다. 도시의 공공 컬렉션도 소수의 연구자나 도시를 방문한 외국의 외교사절에게만 공개됐었다.
여기에 변화를 가져온 것은 ‘박물관’ 문화. 왕족이나 귀족의 사적 컬렉션이 공공 박물관에 전시되면서, 비로소 대중은 예술의 향유자가 된다. 이 변화는 때로 정치적 격변을 동반하기도 한다. 가령 프랑스혁명은 부르봉 왕조를 타도하고, 그들의 사적 소장품을 전인민의 소유로 선언한다. 루브르 박물관은 그렇게 탄생했다.
엘리트예술에 대한 대중의 반란은 물론 계몽주의 사상과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다. 민주주의란 한 마디로 시민들의 자율적 통치. 한 마디로 남의 명령만 듣고 살던 봉건적 신민을 자신을 스스로 다스리는 근대적 주체로 세우려면 ‘교양’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예술의 민주화 과정에서 대중은 지식인과 연대를 했었다. 당시에 지식인들은 자신의 지식을 지배계급이 아니라 민중을 위해 사용하려 했고, 대중은 지식인과 연대하여 자신들에게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 권리를 돌려주려는 투쟁에 기꺼이 동참했다.
그 후로 또 한 번 대중의 반란이 있었다. 나치 혁명이었다. 이번에 표적이 된 것은 난해하기 짝이 없는 현대예술. 대중의 요구는 이번에도 역시 예술을 다시 대중에게 돌려달라는 것이었다. 재미있는 것은 이 운동이 “지식인을 타도하라”는 구호와 더불어 진행됐다는 점이다.
대중의 반란에 아인슈타인과 같은 과학자, 토마스 만과 같은 소설가, 벤야민과 같은 비평가는 고국을 떠나 망명을 떠나야 했다. 지성이 떠난 빈 자리를 채운 것은 ‘몸 튼튼, 간 퉁퉁, 머리 텅텅’, 나치 대중의 뜨거운 애국적 열정이었다.
파울 클레와 같은 현대 화가의 작품은 독일의 공공 미술관에서 일제히 철거된다. 나치는 이렇게 떼어낸 작품들을 모아 전국을 순회하는 ‘퇴폐예술전’을 개최한다. 그런데 이때 대중에게 주리돌림 당한 작품들은 오늘날 현대예술의 걸작들로 꼽힌다.
한편, 나치는 자신들의 예술적 취향에 맞춘 작품들로 ‘대독일전’을 개최한다. 대부분 그리스-로마 예술을 적당히 베껴 거기에 나치의 정치이념을 담은 것들이었다. 당시에 대중의 열렬한 호응을 얻었던 이 정치적 키치는 오늘날 아무런 가치도 인정받지 못한다.
이 문화적 만행은 대중의 발달하지 못한 취향의 지지를 얻어 저질러졌다. 먹고 살고 바쁜 대중들에게 나치 예술가와 피카소의 그림을 보여주며, 어느 게 더 맘에 드는지 물어 보라. 십중팔구 알아먹기 힘든 피카소보다 근사해 보이는 나치의 정치적 키치가 낫다고 하지 않겠는가?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나치 대중이 대중문화의 취향으로 무장하고 있었다는 사실. 나치 대중은 이미 선전상 괴벨스가 제공하는 선전영화, 건축가 슈페어가 연출하는 건축적, 광학적 스펙터클에 빠져 있었다. 이런 대중의 취향에 현대예술은 기껏해야 퇴폐적 지식인들의 자기만족일 뿐이었다.
현대예술의 목적은 관객으로 하여금 상투성을 벗고 세계를 ‘다르게’ 보게 하는 데에 있다. 이를 위해 아방가르드 예술은 일부러 대중의 미감을 거스르곤 한다. 하지만 대중은 보수적이라 기존의 존재방식, 지각방식을 바꾸려 하지 않는다.
여기에 이미 충돌의 싹이 있다. 대중예술과 고급예술은 서로 다른 목적을 갖고 있기에 실은 충돌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현대예술의 도발에 어차피 대중은 무관심으로 대응하고 있지 않은가? 그런데 나치는 대중의 취향을 현대예술을 공격하는 데에 동원해 먹었다.
영화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나는 걸까? 사실 영화에도 여러 종류가 있다. 예술영화는 영화언어의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 형식의 실험에 몰두한다. 이런 영화는 물론 대중의 배척을 받으나, 이런 영화가 열어준 새로운 표현의 가능성은 훗날 대중용 오락영화의 자양분이 된다.
대중을 사로잡아야 하는 오락영화는 그들의 미감에 영합해야 한다. 물론 대중들 역시 늘 새로운 것을 원하기에, 거기에도 약간의 새로움은 필요하다. 하지만 (대개 예술영화에서 이미 한 형식실험에서) 빌려온 그 새로움은 대중이 견딜 수 있는 복용량을 초과하지 않는다.
물론 가끔은 오락성과 예술성을 함께 갖춘 작품도 있다. 가령 <매트릭스> 나 <메멘토> 와 같은 영화는 대중과 전문가를 함께 만족시키지 않았던가. 이렇게 대중과 전문가를 동시에 만족시키는 이중코드가 바로 포스트모던의 문화전략이다. 메멘토> 매트릭스>
사실 대중의 취향과 전문가의 취향이 다른 것은 예술의 일상에 속한다. 그런데 갑자기 대중들이 ‘평론가를 타도하라’고 외치기 시작했다. 영화 한편으로 시작된 이 느닷없는 대중의 반란은 어느 쪽에 가까울까? 디지털 민주주의? 아니면 디지털 파시즘?
어느 인터넷 사이트의 칼럼이 이번 반란의 성격을 말해주는 듯하다. “디워 전쟁이 시작되었다. 충무로를 타격하라.” 이 칼럼은 한국 영화가 잘 나가는 것을 돕지는 못할망정 거기에 초를 치는 평론가와 영화감독을 지목하며 이렇게 외친다. “보라, 여기에 너희들이 타격해야 할 적이 있다.”
이는 1930년대에 씌어진 어느 나치 철학자의 글을 연상시킨다. “1789년 이래로 혁명은 본질적으로 지식인의 작품이었다. 지식인은 국가의 단합에 반대하는 썩어빠진 목적을 갖고 있기 마련이다. 반면 나치혁명은 그것의 결정적인 국면마다 지식인의 지배력에 대항하여 이루어졌다.”
대중이 영화를 보고 스스로 평을 하는 것은 분명 민주주의적인 현상이다. 하지만 그들이 자신들과 다르게 평하는 평론가들을 쫓아다니며 집단으로 공격해대는 것은 분명히 파시스트적이다. 그렇게 전문가들을 타도하면 정말로 한국 영화가 발전할까?
2차대전으로 독일은 폐허가 되었다. 폭격으로 무너진 스산한 베를린 거리는 뜨거운 애국적 가슴들이 차가운 머리들을 추방시킨 후 황폐화한 독일 정신계의 그림이기도 한다. 이 역사, 21세기에 다시 반복하기에는 너무나 원시적이지 않은가?
■ 미적 무관심성 예술외적인 요소에 함몰 바람직안해
대중과 전문가만이 아니라, 대중들 사이에서도 평가가 극과 극으로 갈린다. 대중의 3분의 2는 <디워> 에 만점인 10점을 주고, 대중의 3분의 1은 같은 영화에 1~2점만을 준다. 0점을 줄 수 없어서 속상하다는 이도 있다. 한 영화에 대한 평가가 왜 이렇게 차이가 날까? 디워>
이 문제를 처음으로 이론화한 사람은 독일의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이리라. 그는 미적 평가가 달라지는 것은 평가하는 사람들의 미적 판단이 모두 순수하지는 않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말하자면 어떤 이들은 작품을 평가할 때 예술 외적인 요인을 도입한다는 것이다.
칸트는 진정한 미적 판단을 위해서는 예술 외적인 것에 대한 관심을 끊으라고 주문한다. 그것이 그 유명한 '미적 무관심성'의 원칙이다. 모든 사람들이 작품 외적인 것에 관심을 끊고, 작품 자체에만 주목한다면 평가가 그렇게 극과 극으로 갈리지 않을 거라는 얘기다.
<디워> 의 경우는 어떨까? 이 영화에 열광하는 사람들의 평가를 읽어보면, 대부분 작품에 열광한 이유로 애국주의, 민족주의, 시장주의, 인생극장 코드를 들이대고 있다. 아니면 "온 가족이 오락으로 즐기기에는 무리가 없었다"는 정도다. 디워>
애초에 미적 무관심성의 원리에 벗어난 평가이기에, 영화를 옹호하는 논리도 점점 궁색해져 간다. 처음에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에 대항하는 한국영화'라고 하더니, 이제는 옹호자들도 '틈새를 노리는 방학특선 B급 괴수영화'로 봐달라고 말한다.
영화 한 편 보는 데에 언제나 '미적 무관심성'의 원칙을 지킬 필요는 없다. 사람들이 영화를 보는 동기는 다양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심심풀이 오락 영화를 보고 즐거웠다고 그 영화에 평점 10점을 주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둘은 구별해야 한다.
이는 <디워> 에만 적용되는 얘기가 아니다. 가령 <화려한 휴가> 를 보며 흘리는 눈물이 과연 작품성에서 우러나오는 영화적 감동인지, 아니면 잔혹했던 현실에서 터져 나오는 눈물인지는 구별해야 한다. 화려한> 디워>
문화평론가ㆍ중앙대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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