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가 승자 이명박 후보의 뒤를 이어 연설대에 올라섰다. 5,000여 대의원으로 가득찬 서울 올림픽 체조경기장은 일순 침묵 속으로 빠져들었다.
박 전 대표가 입을 열었다. “사랑하는 국민 여러분, 당원 동지 여러분, 저 박근혜 경선 패배를 인정합니다. 그리고 경선 결과에 깨끗하게 승복합니다. 오늘부터 저는 당원의 본분으로 돌아가 정권 교체를 위해 백의종군하겠습니다.” 순간 행사장에 우래와 같은 박수가 울려 퍼졌다.
20일 박 전 대표가 당 대선후보 경선결과에 깨끗이 승복하자 ‘아름다운 패배’라는 찬사가 쏟아지고 있다. 역대 대선 후보 경선전이 불복과 탈당 등으로 얼룩져왔다는 점에서 이날 박 전 대표의 승복은 신선한 충격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박 전 대표는 또박또박하고 차분한 음성으로“대선후보로 선출되신 이명박 후보님, 진심으로 축하드린다”며 “국민과 당원의 10년 염원을 부디 명심하시어 정권교체에 반드시 성공해주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는 “그 동안 저를 지지해 주셨던 국민 여러분, 동지 여러분, 정치를 하면서 여러분의 과분한 사랑을 받아왔습니다. 이번에도 여러분은 저에게 과분한 사랑을 주셨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여러분의 사랑을 평생 잊지 않겠습니다”는 인사말도 잊지 않았다.
눈물을 떨군 지지자들을 향한 당부의 말도 잊지 않았다. 그는 “경선 과정의 모든 일들을 이제는 잊어버립시다. 하루 아침에 잊을 수 없다면 며칠, 몇 날이 걸려서라도 잊읍시다”고 다독였다. 그리고 “다시 열정으로 채워진 마음으로 돌아와 당의 화합에 노력하고, 열정을 정권 교체에 쏟아주시기 바란다”는 말로 패자의 변을 끝냈다. 그 순간 박 전 대표는 패자였지만, 오히려 승자였다.
각종 인터넷 사이트에도 박 전 대표에 대한 찬사가 홍수를 이뤘다. 한동안 ‘백의 종군’이라는 단어가 인터넷 검색어 1위에 오르기도 했다.
아이디‘exo_kr’라는 네티즌은 “진정한 승리자는 당신인 것 같다”며 “우리사회에도 이런 정도의 길을 걷는 정치인이 있다는 것에 큰 감동을 받았다”고 썼다. 아이디 ‘또랑’은 “경선 불복은 오랫동안 우리 정치의 구태였다. 박 전 대표의 용기는 대한민국 정치사를 한단계 업그레이드 시킨 역사적 사건”이라며 평가했다.
그러나 정치권 안팎에는 박 전 대표의 아름다운 패배가 완성되기 위해선 말 뿐 아니라 당의 대선운동을 적극적으로 돕는 실천이 뒤따라야 한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이동훈 기자 dh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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