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작은 마을 코벤트리에는 고디바 백작부인의 '알몸 시위' 전설이 내려온다. 11세기 고디바 부인이 코벤트리 영주인 남편에게 지나친 세금을 내리라고 조언하자, 남편은 부인에게 알몸으로 말을 타고 성 안을 한바퀴 돌면 그렇게 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고디바 부인은 수취심에 거절할 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리 누드 시위를 감행했고, 감동한 주민들은 피핑톰이라는 재단사 한 사람을 제외하고 모두가 창문을 닫아 알몸을 보지 않는 것으로 보은했다. 유명한 초콜릿 '고디바'의 명칭도 이 부인의 이름에서 따왔다.
이처럼 오랜 역사와 인류 최초의 금기에 도전한다는 상징성까지 지닌 누드 시위가 이제 시대의 변화에 따라 생명력을 잃어가고 있다고 영국 시사주간 이코노미스트 인터넷판이 19일 보도했다.
18일 그린피스가 지구온난화의 심각성을 알리기 위해 주최한 알프스 빙하 앞에서의 누드 사진 퍼포먼스가 그 예이다. 집단누드 사진으로 유명한 미국 사진작가 스펜서 튜닉이 맡은 사진촬영에는 600명여명의 자원봉사자가 참여해 옷을 벗었다.
그러나 튜닉이 그 동안 찍어 온 집단 누드사진에 비하면 규모가 크게 줄어든 알몸 이벤트였다. 1980년대 한두 명이나 소규모 그룹의 누드 사진을 찍기 시작한 튜닉은 한번에 찍는 대상자를 수백명, 수천명로 계속 늘렸고, 5월 멕시코시티에서는 1만8,000명의 집단 누드 사진을 찍었다.
따라서 이번 그린피스 행사에 겨우 600명이 참가한 것은 누드 시위가 더 이상 대중에게 강렬한 충격을 주는 힘을 잃었다는 방증이라고 이 잡지는 분석했다.
1960년대 말 존 레넌과 오노 요코 부부가 세계 평화를 기원한다며 앨범 표지에 자기들의 누드 사진을 실었을 때만 해도 세간의 반발은 엄청났다. 하지만 노출에 관대해진 지금은 가수들이 누드 앨범을 낸다고 해도 그 같은 비난을 받지 않는다. 학생들은 여성의 나체를 보기 위해 <내셔널 지오그래픽> 잡지에 실린 아프리카 원주민 여성의 사진을 찾는 대신 인터넷에 접속한다. 내셔널>
누드에 대한 반발이 완전히 없어진 것은 아니다. 2004년 미 미식축구 슈퍼볼 하프타임 공연 도중 가수 재닛 잭슨의 가슴 노출 사고가 일어나자 미 전역이 난리가 났었다.
스티븐 고프는 알몸으로 영국 종단 일주를 하다가 가는 곳마다 지역 경찰에 체포돼 현실의 벽을 느껴야 했다. 이제 누드 시위 자체로는 기대 효과를 얻기 어렵다. 처음 보는 신선한 사건이거나 연예인 등 유명인과 연관돼야 대중의 화제에 오르는 시대가 됐다.
최진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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