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 지지자들이 이명박 전 서울시장을 대선후보로 결정한 것은 ‘작은 정부’라는 정통 우파 진영의 경제정책보다는 ‘성장과 공급 확대’라는 개발 우선의 가치를 선택한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이 후보와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의 경제공약은 규제 완화, 7% 성장, 감세 등 상당부분에서 일치한다.
하지만 최우선 목표에서는 차이가 난다. 이 후보의 대표 공약은 ‘7ㆍ4ㆍ7’(7% 성장, 1인당 국민소득 4만 달러, 7대 강국)이다. ‘경제성장률 제고’를 가장 앞세우고 있다. 반면 박 전 대표의 슬로건은 ‘줄ㆍ푸ㆍ세’(세금 줄이고, 규제 풀고, 법ㆍ원칙 세우자)이다. ‘작은 정부’ 구현이 최우선 과제인 셈이다.
이 후보는 법인세 인하, 출자총액제한제도 폐지, 규제 일몰제 도입 등 몇 가지 상징적 정책을 제외하곤 아직까지 구체적인 경제공약을 내놓지 않은 상태다. 후보간 토론회나 언론을 통해 나타난 이 후보 발언을 통해 분야별 경제정책 구상을 알아본다.
■ 세금
이 후보는 법인세율 20%로 인하, 근로자 주택마련 및 소득공제 확대, 유류세 10% 인하, 취득ㆍ등록세 통합 및 거래세 인하, 투자세액공제제도 연장, 각종 준조세 항목 정비 등 감세방안을 내놓고 있다. 이에 동반되는 재정악화 방지책은 ‘예산 10% 절감’이다. 즉 감세와 재정 감축을 통해 민간 경제가 활성화하면 자연스럽게 세수도 늘어날 것이라는 발상이다.
문제는 이런 구상이 제대로 작동할 수 있는 구체적 방안을 갖고 있느냐 하는 것이다. 이 후보는 당장 법인세율 인하와 관련해 논란이 일자, 이후 구체적인 인하율에 대해 침묵하는 모습을 보였다. 또 향후 복지 지출이 늘어날 수 밖에 없다는 점에 대해 인식을 같이 했지만, 이를 뒷받침할 적극적인 정책 설계는 아직 제시하지 않고 있다.
■ 부동산
난마처럼 얽힌 부동산 문제에 대한 이 후보의 해법은 한마디로 ‘공급 확대’다. 주택가격의 급등은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게 그의 시각이다. 이 후보는 공급확대 방안으로 용적률 상향을 통한 재개발ㆍ재건축 활성화, 택지공급 확대, 과도한 규제 환화 등을 제시하고 있다.
또 다른 부동산 관련 핵심 정책은 신혼부부 주택 반값 공급이다. 수도권과 광역시에 사는 결혼 3년차 이하 무주택 신혼부부 중 ‘신혼부부 주택마련 청약저축’(가칭)에 가입한 사람들이 대상이다. 이들이 첫 출산을 하면 1년 안에 신축 아파트를 반값에 임대 또는 분양한다는 것이다.
이 같은 공급위주 정책은 참여정부의 실정을 보완하는 성격을 지니지만, 투기적 수요에 따른 주택가격 상승 등의 부작용이 우려된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지금처럼 부동자금이 많이 풀린 상태에서 어설픈 공급 확대는 간신히 잠재워 놓은 투기수요에 불을 지를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다.
■ 일자리
이 후보의 일자리 늘리기 정책은 7% 성장률 달성과 한반도 대운하 사업에 달려있다. 이 후보는 대운하 건설기간 중 40만개, 건설 이후 30만개 일자리가 만들어질 것이라고 장담한다. 이밖에 혁신형 중소기업을 연간 1만개 늘려 향후 5년간 일자리 50만개를 창출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현재 노동계의 난제인 비정규직이나 노인일자리 문제 등에 대한 해법은 내놓지 못하고 있다. 고령자 고용촉진장려금 지원을 약속했으나, 필요 재원은 정부예산 10% 절감 분에서 마련하겠다는 비현실적인 대안 뿐이다.
■ 기업환경
재벌기업의 최고경영자(CEO) 출신답게 기업하기 좋은 환경조성 정책이 다양하다. 출자총액제한제도 폐지, 규제 일몰제(일정 시점이 되면 자동폐지) 도입, 적대적 인수합병(M&A)으로부터 경영권 보호장치 마련, 금융규제 완화 등 오랫동안 대기업들이 염원해왔던 친재벌 정책을 망라했다.
무분규 선언 노사에 각종 지원을 우선하고 무노동ㆍ무임금 원칙 준수 등 노사문제도 사측 입장을 많이 반영했다. 때문에 이 후보가 집권하면 기업의 사적 이익과 국민경제 전체 공익의 조화를 위한 정부의 기능이 무력화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제기된다.
정영오 기자 young5@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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