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 피어 오르는 질긴 다년생화(花)'. <광기, 패닉, 붕괴: 금융위기의 역사> 라는 명저를 남긴 경제학자 찰스 킨들버거는 금융위기를 이렇게 비유했다. 광기,>
과거 수많은 쓰라린 실패의 교훈에도 불구하고,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몰역사성을 꼬집은 말이다. 그에 의하면 시장이 근거 없는 낙관론에 빠지고, 신용을 남발할 때 위기는 시작된다.
"광기 국면에서는 언제나 돈이 공짜로 보인다"고 말했다. 하지만 위기 징후가 보이면 출입문이 닫히기 전에 빠져 나가려는 심리가 작용해 시장은 패닉에 빠지고, 주식 부동산등 자산의 거품이 붕괴하면서 위기를 맞는다.
▦2000년 이후 세계 금융시장은 저금리로 인해 넘쳐나는 유동성으로 흥청망청 돈잔치를 벌여왔다. 1980년 10조달러에 불과하던 금융자산은 2005년 140조달러로 불어났다. 첨단 금융기법을 활용한 파생상품 규모는 16년 만에 83배나 폭증했다.
헤지펀드 같은 투기자본은 이러한 자금을 무기로 전 세계 주식, 부동산, 외환 시장을 마음껏 휘젓고 다녔다. 유동성 과잉과 자산 거품을 우려하는 목소리는 금융자본이 세계를 지배하는 '신 자본주의' 시대가 열렸다는 낙관론에 묻혀버렸다.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는 이러한 광기의 부산물이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이 세계 금융시장을 패닉에 빠뜨린 배경은 얽히고 설킨 파생금융 상품의 복잡성 때문이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채권은 복잡한 유동화 과정을 거쳐 수많은 파생상품으로 바뀐 뒤 전세계 투자자에게 배분됐기 때문에 누구도 정확한 피해 규모를 알 수 없다. 끝이 보이지 않는 두려움이 위기를 확대재생산하고 있다.
그러나 사태의 본질은 금융의 기본인 위험(리스크) 평가를 외면한 금융회사의 도덕적 해이다. 파생상품이 워낙 복잡하다 보니 리스크 평가가 쉽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그 위험성을 알면서도 폭탄 돌리기 식으로 상품을 남발해온 책임을 피하기 어렵다.
▦영국의 파이낸셜 타임스는 최근 금융자본주의 특집에서 "세계경제는 자유방임주의가 횡행하던 20세기 초와 상황이 흡사하다"며 "무한 자유경쟁의 끝은 제1차 세계대전, 대공황이었다"고 경고한 적이 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의 향방은 아직도 예측불허이지만 금융자본주의의 한계와 문제를 드러낸 점은 분명하다.
한국 금융시장은 외부 변동성에 어느 나라보다 취약하다. 2,000이 넘던 주가지수는 이번 사태 이후 1,600대로까지 주저앉았다. 남의 일 보듯 한가로운 평가만 할 때가 아니다.
배정근 논설위원 jkpa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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