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악과 전통무용의 큰 어른 심소(心韶) 김천흥(金千興)옹이 18일 오전 11시50분 서울 방배동 자택에서 별세했다. 향년 98세.
중요무형문화재 제1호 종묘제례악과 제39호 처용무 기능보유자인 고인은 1922년 궁중음악 양성기관인 이왕직 아악부에 들어가 궁중음악과 무용을 배웠다.
이듬해에 무동(舞童)으로 뽑혀 순종황제 50수 잔치 때 춤을 춰 '조선시대 마지막 무동'으로 알려졌다. 이후 평생 후학을 양성하면서 전통무용과 국악의 보존 및 재현에 힘쓴 고인은 국악계와 무용계 최고령 원로로 '살아있는 한국 춤의 역사'로 불린다.
'근대 춤의 아버지' 한성준 선생으로부터 승무 등 민속무를 사사한 고인은 1940년대에는 조선예술협회 조선악부의 일원으로 전국을 돌아다니며 공연했고 해방 후에는 후신인 대한국악원에서 춤을 가르쳤다. 그는 자신의 배움과 경험을 토대로 55년 '김천흥고전무용연구소'를 열어 후진을 키웠으며 80년대에는 국립국악원을 통해 궁중무 40여 종을 재현했다.
그 동안 김영숙 하루미 김매자 김명숙 등 수많은 무용계 제자를 길렀으며 국악계에도 이흥구 등 후학을 배출했다. 생전에는 "유파만 찾지 말고 여러 사람의 춤 세계를 연구해 자기 나름대로 새로운 면을 만들어내야 한다"며 자신만의 예술세계를 정립할 것을 후학에게 당부했다.
고인은 90이 넘은 나이에도 종종 무대에 올라 후배들에게 귀감을 보였다. 2002년 제자들이 마련한 자신의 무악인생 80주년 기념공연에서는 양금으로 <영산회상> 을 연주하고, 궁중무 <춘앵전> 의 단아한 춤사위를 선보였다. 춘앵전> 영산회상>
대한민국 예술원 회원이기도 한 고인은 무용극 <처용랑> 과 <만파식적> 으로 서울시문화상(1960), 예술원상(1970)을 수상했고 국민훈장 모란장(1973), 금관문화훈장(2001) 등을 받았다. 만파식적> 처용랑>
한국 춤과 국악의 보존 및 재현에도 힘써 <정악양금보> , <정악해금보> 등의 단행본을 남겼으며 자신의 삶을 돌아본 <심소 김천흥 무악 70년> (1995)을 내기도 했다. 심소> 정악해금보> 정악양금보>
유족으로는 아들 정운(재미)씨 등 3남 2녀가 있다. 빈소는 강남성모병원, 발인은 22일 오전. (02)590-2609
이성원 기자 sungw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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