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대표 소설가이자 시인 에드거 앨런 포의 생일인 1월 19일, 베일에 쌓인 인물이 그의 무덤을 찾아와 헌화, 조문하는 일이 실제로는 교회 기부금을 모으기 위해 시작된 것으로 밝혀졌다.
이제까지 수 십년 동안 한 해도 빠짐없이 그의 무덤에 조의를 표한 수수께끼의 인물 '포 토스터(Poe TOASTER)'를 사람들은 포의 열광적인 팬으로 추측해왔다.
그런데 샘 포포라(92)라는 전직 광고회사 중역이 최근 유에스투데이, CNN 등과 인터뷰를 갖고 포를 기리는 '신비로운 의식'을 자신이 기획했다고 폭로했다.
보스턴 태생인 포는 40세인 1849년 10월 7일 볼티모어에서 요절해 그곳에 있는 웨스트민스터 장로교회 묘지에 묻혔다. 그의 묘지에는 1949년부터 생일마다 장미 세 송이와 코냑 반 병이 제물로 바쳐진 것으로 알려졌으며 올해도 어김없이 같은 물건이 놓여졌다.
볼티모어에 있는 '에드거 앨런 포 하우스 박물관'의 큐레이터 제프 제롬은 이런 '신성한' 장면을 30년간 지켜보며 이를 외부 특히 언론에 널리 알려 왔다.
하지만 포포라의 고백에 따르면 이들 제물은 그와, 사정을 잘 아는 도우미 네 명이 번갈아 바쳐 왔다는 것이다. 포포라는 "재정 위기에 빠진 교회를 선전하기 위한 아이디어로 처음 시작했는데 이처럼 전세계로 알려져 화제를 불러 일으킬 줄은 몰랐다"고 토로했다.
그는 자신을 포함해 신자가 60여명에 불과한 웨스트민스터 장로교회를 살릴 목적으로 이곳에 안식처를 마련한 포를 내세우기로 하고 나름대로 창작을 했는데 바로 효과를 보았다고 말했다.
1852년 세워진 웨스트민스터 장로교회는 자금난에 허덕였는데 '포 토스터'의 존재가 널리 알려지면서 자금 사정이 훨씬 나아졌다고 한다. 그러나 포포라는 점차 조문 행사가 유명해지면서 진실을 얘기할 수 없게 됐다고 고백했다.
그러면서도 포포라는 "그래도 나는 포를 사랑하는 팬이며 포에 관해 얘기하는 것을 좋아하고 그의 작품을 세계에 전파하기 위해 적지 않은 역할을 했다고 자부한다"며 "어떻든 원래 포를 좋아했기 때문에 이런 일이 생겼다"고 해명했다.
포포라는 광고인 출신답게 언론을 이용해 포의 무덤에 장미와 코냑을 최초로 바친 시기를 1949년으로 조작했지만 실제로는 1976년께부터 제물을 갖다 놓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포 토스터'의 수호자를 자처한 제롬은 "포포라의 증언을 듣고 친한 할아버지로부터 머리를 심하게 맞은 기분"이라며 쇼크를 받은 사실을 숨기지 않았다.
제롬은 "77년부터 해마다 '포 토스터'를 지켜보면서 그를 신뢰할 수 있는 나의 인생 선배로 생각했기 때문에 포포라의 말은 정말 믿고 싶지 않다"며 소중한 비밀이 사라진 데 대해 진한 아쉬움을 나타냈다.
그러나 제롬은 "포포라가 나타나든 말든, 내년 1월 19일에도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포 토스터'를 보러 묘지에 가겠다"고 말했다.
한성숙 기자 hans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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