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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병현 전 대사의 한중수교 비망록] <20> 첫 예비회담 끝내고 서로 수교 성사 예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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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병현 전 대사의 한중수교 비망록] <20> 첫 예비회담 끝내고 서로 수교 성사 예감

입력
2007.08.20 0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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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일담이지만 우리나 중국이나 베이징 제1차 예비회담을 마치고 난 뒤 수교 성사를 예감했던 것 같다.

장루이지에(張瑞杰) 대사는 수교 5주년을 기념해 나와 함께 한국의 한 신문과 가진 공동인터뷰에서 "첫 회담을 마치고 수교가 가능하리라고 예견했다"고 회상한 바 있다. 나도 비슷한 예상을 했었다.

제1차 예비회담의 결과 한중수교를 조심스럽게나마 낙관하게 된 것은, 회담 내용 못지않게 분위기와 양측 대표간 인간적인 친근감과 상호신뢰가 이루어졌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흔히 첫 인상이 평생을 간다고 말한다. 국가 대 국가간 만남도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첫 만남의 분위기가 중요한 것이다. 우리 대표단원 6명 가운데 베이징 주재 무역대표부에 근무하던 김하중 참사관(현 중국주재대사)을 제외하곤 모두 중국이 첫 걸음이었다.

회담 전망도 전혀 예측할 수 없어 하나같이 무거운 마음으로 댜오위타이(釣魚臺)에 짐을 풀었다. 하지만 막막한 심정은 곧 사그라졌다. 의외로 첫 날부터 양측 대표단은 친숙해지기 시작했다.

첫 날 저녁 중국측 수석대표 장 대사가 우리 대표단을 위해 주최한 환영만찬부터 격식 없이 편안한 자리가 됐다. 산해진미의 댜오위타이 요리와 50도 전후의 독특한 향의 마오타이는 서로에게 호감을 갖고 있던 양측을 순식간에 가깝게 만든 촉매제로 제격이었다.

장 대사와 나는 술을 어지간히 드는 수준이었고 양측 대표들 역시 주량이 상당한 편이라 요리가 계속 나오고 환담이 이어지는 가운데 마오타이로 건배가 거듭되면서 긴장했던 표정들이 풀리고 웃음이 잦아졌다. 분위기를 풀어나가는 상견례는 일단 성공적이었다.

댜오위타이라는 공간에서 사실상 연금상태나 다름없이 지내면서 숙식을 같이 하고 집중적인 회의 외에도 나머지 시간을 함께 보낸 것이 짧은 시간에 서로 친숙해지는데 더욱 기여했다.

한국말이 유창한 장 대사와 대부분의 중국대표 단원들은 우리 대표들과 아무런 언어장벽 없이 많은 시간 대화를 나누었고 이 또한 서로 신뢰감을 쌓아가게 만들었다. 회담과 회담 사이 휴식시간에도 장 대사와 나는 물론 다른 대표들도 환담도 나누고 산보도 같이 했다.

댜오위타이 국빈관은 한중수교 비밀교섭을 하기에 이상적인 공간과 분위기를 마련해주었다. 특별히 한국대표단의 구미에 맞춘 다양한 중국요리와 완벽한 보안은 우리 대표단이 마음의 여유를 찾는데 큰 도움이 됐다.

장신에 신사의 풍모를 갖춘 장 대사는 첫 인상부터 믿음을 주었다. 직선적이되 솔직하고 정직하다는 느낌을 주었다. 그러한 느낌 그대로 인간미 또한 풍부했다.

회담 이틀째 만찬은 한국측이 주최했는데 중국대표단과 함께 장팅옌(張庭延) 외교부 아주사 부사장(아주국 부국장)을 초청했다. 수교협상을 막후에서 연출하는 주역으로 중국측 회담대표 일원인 단징(譚靜) 1등 서기관의 남편이기도 했다. 나중에 초대 주한대사로 부임했다.

이날 만찬을 주최한 나는 의도적으로 1985년에 있었던 중국 어뢰정의 한국영해 침범 사건을 거론했다. 당시 한국은 이 사건을 국제법상 '선상반란'으로 규정하고 어뢰정과 승무원을 중국에 돌려보냈다.

나는 어뢰정과 승무원을 대만으로 넘기지 않고 중국측에 돌려주면서 신화사(新華社) 홍콩지사장을 통해 교환한 문서를 상기시키며 당시 내가 한국측 실무책임자였다고 밝혔다.

이에 장루이지에 대사와 장팅옌 부사장은 당시 각각 아주사 부사장과 조선처장으로 중국측 실무책임자로 일했다고 털어놓으면서 자칫 무력충돌이 될 뻔했던 긴박했던 어뢰정 사건의 처리가 84년 중국 민항기 사건과 함께 한중 관계를 개선하는 계기를 만들고 도움을 주었다고 회고했다. 상호신뢰를 조성하는 좋은 화제였다.

사실 양측은 다 같이 회담 분위기에 신경을 쓰고 있었다. 서로 불필요한 경계심을 해소하고 같은 배를 타고 가면서 협상하는 분위기로 유도하려고 조심스럽게 노력하고 있음을 느꼈다.

처음에 양측 모두 긴장했던 건 사실이지만 서로 대립된 입장에서 대결하기보다는 타협을 통해 공동의 목표를 함께 찾아가는 접근법을 모색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이러한 분위기와 배경을 무대로 양국대표단은 첫 회담부터 일이 성사될 것 같은 예감을 가졌다는 것이 5년 뒤 공동기자회견에서 밝혀진 셈이다.

회담의 첫 분위기와 인간적인 친밀감을 바탕으로 신뢰감을 쌓아나가는 것은 매우 중요한 회담 성패의 요인임을 말해주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동해사업 제1차 예비회담은 소기의 성과를 거둔 셈이다.

한중문화청소년협회(미래숲)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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